선릉.정릉.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1번지 일대

* 선릉 : 조선 제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릉

* 정릉 : 조선 제 11대 중종릉


선정릉을 방문 한건 찌는 듯한 여름의 시작이었습니다.


원래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계획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성동에 있는 어떤 회사에서 견적의뢰를 하면서 방문상담을 요청했던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견적을 내주었고 도면도 다 확인한 상태에서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 갑자기 방문상담을 요청하는데 가기도 뭣하고....안가기도 뭣한....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루종일 상담을 하고 견적을 내고 하는 일인데 방문을 요청하는 곳들을 모두 찾아다닐수도 없고, 또 방문요청을 하는  곳들이 방문할 필요도 없는 일이거나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견적내용에 관계없이 자기들 편의로 오라가라 하는 곳들이 많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미 견적을 내줬던 곳에서 제차 연락이 온 터이고 몇가지만 확인후 바로 발주를 내려고 한다 하니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차를 몰고 방문요청지에 가보니 십몇층 짜리 건물인데 그 회사소유였습니다. 그런데....주차장에 차를 못들어가게 하는 겁니다!!!

상담을 요청해서 온것이라 해도 주차장이 협소해 방문차량은 들여보낼 수 없다 합니다. 어이가 없어서 방문요청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말했더니....(당연히 경비실을 바꿔달라고 해서 들여보내 줄꺼라 생각했음)... 그럼 자기도 어쩔 수 없으니 차를 딴데 대랍니다.


????? 

강남 삼성동 한복판에서 차를 대체 어디다가 대나요??

망연자실해서 그나마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니 휭...옆으로 주차단속반이 지나갑니다. 열심히 주변을 검색해보니 도보 십여분 위치에 선정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정릉 주차장에 차를 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업체는 이미 다른 곳을 선정해 놓고서는 혹시나 가격을 좀 후려칠 수 있을까 해서 저를 부른것 이었습니다. 타 업체에서 이미 자신들 스타일에 맞게 셋팅해 놓은 것을 그대로 맞춰 달라고 하면 그걸 대체 어떻게 경쟁력 있게 해 줄수 있나요. 주차 할 곳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채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문요청업체와의 면담을 끝내고 나올때 화를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정릉 주차장까지 걸어오면서도 짜증과 화가 어떻게 제어가 되지 않을 듯 했습니다.


이대로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듯 해서 가방을 차 안에 던져 넣고 선정릉의 숲으로......



선.정릉 능역에는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릉인 '선릉'과 11대 중종의 릉 '정릉'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릉이 동원이강릉의 형태라 서로 다른 3기의 릉이 있는 듯 합니다.



매표소와 왕릉역사관을 둘러본 후 조금 걷다보니 재실이 나옵니다.



재실의 바로 앞은 이렇게 강남의 한복판 입니다. 기존에 찾아봤던 다른 릉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라 이질적이기 까지 합니다. 이 때 이미 격양된 감정은 많이 차분해 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 도심을 걷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이곳에 있는 듯 합니다.



앗....정릉으로 향하는 길이 공사중 입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우수정을 설치하는 듯 합니다. 정릉은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의 왕릉중 가장 많은 풍파를 겪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들 이지만 그중에서도 정릉은 지대가 낮아 잦은 침수를 당했다 합니다. 더구나 임진왜란 때에는 능이 크게 훼손되기 까지 합니다. - 왜란이 끝난 후 일본이 국교 재개를 요청하자 조선에서는 능을 훼손한 이를 잡아 보내줄 것을 조건으로 하였고, 이에 조선과 왜의 중계자 역할을 하던 쓰시마도주가 조선에는 온적도 없는 일반 죄인 두명을 잡아 보냈으나 이 사실을 조선에서 알고서도 두명을 처형함으로써 마무리 지었다 합니다 -



아....가봤던 다른 릉들이 모두 낮은 구릉의 지형을 살려 완만한 강을 만들고 봉분을 조성한 후 곡장 뒷쪽으로 잉을 조성한데 비해 선릉은 지대가 낮다 하더니 능역과 봉분 전체가 낮습니다. 


아래에서 바라 볼때 이렇게 가깝게 보인 릉이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중종묘는 원래 희릉으로 고양에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곧 첫번째 계비 장경왕후의 근처로 이장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두번째 계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옮겨지게 됩니다. 문정왕후는 이곳을 길지라 하여 옮기고 훗날 자신이 그 옆에 묻히길 바라였으나 옮긴 장소가 홍수에 자주 침수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태릉에 묻히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중종 또한 왕의 무덤으로는 드물게 홀로이 단릉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랬던 것인지 조성된 시가지가 능역을 모두 갉아먹어 이리된 것인지는 알길이 없으나 홍살문까지의 진입로가 옆으로 나 있습니다. 



참도를 걷다 문득 돌아보니.....높은 빌딩들이 집어 삼킬듯 위압적 입니다. 아까 재실을 지나올 때는 막연히 도심과 참 가깝다 생각했던 마음인데... 이건 가깝다 말하기엔 너무 참담하게 능역을 침범한것 아닌가 싶습니다. 홍살문 바로 뒷쪽이 대로 입니다. 



정자각 바로 뒤에도 건물이 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훼손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유일하게 북한에 있는 후릉(제 2대 정종)의 사진을 보곤 정자각 자리까지 밀고 들어온 논밭을 보고 개탄 했는데....오십보백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본 봉분입니다. 시야를 낮추지 않아도 잘 보이네요. 확실히 다른 능보다 낮긴 낮습니다. 오르기 전 까지는 가장 가까이 보이는 능이지만 위로 오르지는 못하게 되어 있어서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봉분까지 오를 수 있는 관람로가 있을까 해서 몇번을 두리번거렸지만 안타깝네요.


이제 성종대왕의 선릉으로 향합니다.



릉 주변이 도심과 너무 가까웠던 것에 반해 선릉과 정릉 사이는 나름 울창한 숲을 이루며 떨어져 있어 한가로이 걷기 좋았습니다. 또 그 오가는 길이 언덕 그대로의 경사와 굴곡을 가지고 있어 그냥 숲길을 걷는 듯 합니다.


주변의 높은 건물도 바삐오가는 사람들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도 없습니다. 조금 전 까지의 분노와 바쁜 스케줄도 없습니다. 바로 바깥은 대한민국 서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강남 한복판인데 이곳은 마치 다른 곳인듯 합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속의 섬' 


선릉과 정릉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게 가장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우는 조선왕릉들을 방문 할 때마다 느껴왔던 한가로운 감정이었지만, 이질적인 주변 환경 때문인지 선릉과 정릉이 주는 감정은 확실히 더했던 듯 합니다.



느릿느릿 걷다보니 정현왕후릉에 먼저 도착합니다. 동원이강릉의 형식이지만 성종릉과는 꽤 떨어져 있고 광릉처럼 대칭형도 아니기 때문에 거의 독립된 단릉처럼 보입니다. 정릉과 마찬가지로 언덕배기에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커다란 봉문처럼 보이는 낮은 릉입니다.


올라가 볼 수 없나 두리번 거리니 측면에 난간석주가 묻혀 있습니다. 장마때 토사가 쓸려가며 묻힌것이 드러난 것인데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고 울타리와 안내판을 설치하여 둔것이 이채롭습니다. 현재 정현왕후릉의 난간석은 모두 온전한 상태로 과거에 보수를 한 잔재를 땅에 묻은것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난간석주 옆으로는 낮은 계단이 있어 능역위로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이질적이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는 듯 합니다.




관람로는 측면으로 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석상의 뒷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중종릉과 성종릉의 나름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나마 도심과는 좀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다시 성종의 릉으로 발길을 돌리면 위와 같이 측면으로 오를 수 있는 관람로가 나 있습니다. 정현왕후릉과 같이 측면으로 오르기 때문에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지만 릉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관람로를 만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있습니다. 울타리 밖에서 보아야 했지만 어차피 완전히 공개된 릉역이라 해도 개인적으로 상계까지 침범하지는 않기 때문에 관람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성종은 역대 조선왕들 중에서 가장 유교원리에 충실했던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유학을 신봉하던 당대의 신하들에게는 세종과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성군으로 평가 받았다 합니다. 일을 결정할 때 다른 어떤 왕들보다 신하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중용하게 되었는데 이러다보니 대간의 힘이 강력해지게 됩니다. - 홍문관, 사헌부, 사건원 -


대간은 아주 사사로운 왕의 행동까지도 간섭하고 제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라에 작은 흉한 일이 있어도 왕의 성덕이 부족하다 비판하였다 하니.....과연 성종이 아니면 어떤 왕이 참아 냈을까 싶습니다.


다만...세자인 연산군은 왕을 사사건건 통제하려 드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했던 듯 합니다.



봉분에서 바라본 정자각 입니다. 이상스럽게도 릉을 향하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히 틀어진 듯 보입니다. 정현왕후와의 동원이강릉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두 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중간쯤을 향한 듯 보입니다.



바로 바깥으로 보이는 오피스건물 입니다. 오백년의 세월이 함께 공존하는 듯 합니다. 다만 정릉에서 느낀것과 같이 지나치게 가까워서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바로 앞의 오피스거리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 입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참도 입니다. 정릉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홍살문까지의 길이 일직선이 아닙니다. 원래 그런것인지는 알수 없지만요.


선릉.정릉은 다녀본 여러 왕릉 중에서도 무척 기분이 좋았고 애착이 갔던 곳 입니다. 주변의 바쁜 풍경에도 아랑곳 않고 홀로 느릴 수 있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릉과 선릉 사이의 오솔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꼭 함께 다시 와야지' 다짐 했던 곳 입니다.


아직 못갔지만요....아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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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말. 예산으로 출장이 잡혔습니다.

방문지 근처에 마침 추사고택이 있어 찾아봤습니다.


구름한점 찾기 힘든 한여름.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차를 하면서도 이 찜통더위에 차를 세워 놓고 나중에 다시 탈 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솟을지붕 대문 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바로 사랑채가 나옵니다.



ㄱ자 형태의 사랑채 입니다. 기둥마다 한자가 써 있습니다. 아마도 추사체로 써 놓았겠지요.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였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다시 담아본 사랑채 입니다. 우측 지붕은 맞배지붕형태인데 꺽어진 좌측은 팔각지붕인 특이한 형태이네요.



마당에서 사진을 담으니 뒤쪽으로 안채가 보입니다.



안채 내부 입니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고 수수합니다. 마루에 앉아 잠시 쉬고 싶었으나 갈길이 먼 관계로....

지금도 손을 조금 보면 거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뒷쪽으로 선생의 영당이 있습니다. 



영당쪽에서 바라본 안채와 사랑채 입니다. 쪽마루가 아기자기 하네요.



사랑채의 쪽마루 입니다. 마루가 귀여워서 한참을 봤습니다. 앞뒷문을 열고 저 쪽마루에 앉아 식혜라도 한사발 들이킨다면 더 바랄게 없겠네요.



완만한 곡선을 만드는 지붕입니다. 지붕이 아기자기하고 이쁘네요.


짧은 관람을 마치고 차를 타려니.....

아...찜통같아서 도저히 탈수가 없더군요. 시동 걸어 놓고 나무그늘에 한참을 앉아 있다 왔습니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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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사릉리에 '정순왕후(단종비)'가 묻힌 '사릉'의 인근에는 '광해군묘'가 있다.


길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교인묘지 내부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누워서도 궁핍하고 고단한 상황을 벗지 못하는 느낌이라 애처롭기 까지 하다.


광해군묘를 찾아가는 방법은 따로 포스팅해 놓았으니 가시는 분들은 참고 하시길.


[사릉, 광해군묘, 임해군묘, 성묘(공빈김씨), 안빈묘 찾아가는 방법]


광해군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9 (영락교회 공원묘지 내)



위에 링크한 찾아가는 길을 참고하여 영락교회 공원묘지로 들어서서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다가 평지가 나올 때쯤 좌측으로 광해군묘 표지가 나온다. 폐위되었다 해도 왕이었던지라 나름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인근의 다른 묘에 비해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마땅히 차를 둘 곳이 애매해 잠시 둘러볼 요량이면 길측면에 대 놓고 후딱 보고와도 될듯한데 오래 지체 할 생각이면 조금 더 들어가면 주차장이 있으니 대고 조금 걸어오는게 나을 듯 하다. 


(사릉지구 관리소에서 관리되는 묘인데 철문으로 닫혀 있긴 하나 잠겨 있진 않으니 견학 후 나올 때는 꼭 잘 닫고 나오세요)



철문을 열고 통과하여 흙길을 조금 내려오면 광해군묘가 보인다.



아....이게 참... 진입로도 마땅찮고 사진찍을 공간도 마땅찮고 아이들과 함께 하니 조심스러워 운신할 공간도 넉넉치 않다. 폐위되었다고는 하나 15년간 만인지상의 군주였던 이의 묘가 어찌 이런지.... 승자의 시각으로 남겨진 기록만으로도 아직까지 광해군에 대한 여러평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광해군이 폐위될 정도의 폭정이나 패륜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려울것 같다.


친형인 임해군을 비롯한 여러 왕족들의 숙청이 반정군의 큰 명분중 하나였기는 하나 사실 왕이 되지 못한 상위 왕족들의 운명은 대부분 부와 영예를 누리되 왕권강화에 걸림돌이 되거나 반정군에 의해 이름이 오르내리면 사사를 면키 어려웠다. 다만 그 처리과정에서 대북파들의 주도에 대한 견제가 작용했고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사대부들을 설득하지 못한것이 치명적이지 않았을까.


조선이 어떤나라인가. 유교와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의리.... 광해군의 패착은 논리와 명분에서 사대부를 누르지 못해 반정의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이 아닐까. (그노무 명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예송논쟁'만 봐도 그러하다......(혹자는 조선역사 최고의 키보드배틀이라고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찌 알까. 다만 앞으로도 광해군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릴듯 하다. 그의 생전에도 그러했듯이.


폐위되어 제주로 유배를 간 후 부인과 며느리 아들이 차례로 홧병과 자결로 세상을 등졌지만 광해군은 67세로 나름 천수를 누리고 갔다 한다. (그 속은 어땠을지....)


유언으로 어머니묘가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 했다 하는데 그 때문인지 그 인근에 성묘(광해군의 생모 공빈김씨)가 있고....또 광해군에 의해 - 혹은 그의 묵인에 의해 죽은 형 임해군의 묘도 있다.


아빠의 영향을 받아서이겠지만 광해군. 우리아이들이 좋아하는 왕이다. '광종'이라 불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주장한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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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상주에 출장갈 일이 생겼다. 마침 금요일이라 와이프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온 가족이 길을 나섰다.

출장지 바로 근처에 도남서원이 있어서 내가 업무를 볼 동안 아이들과 와이프는 도남서원을 관람하게 할 생각이었다.


도남서원 근처 주차장. 그데 뭔가....서원 주차장이라기에는 주차장이 너무 크다. 큰걸 넘어서서 좀 황량하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인적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는 길이다. 


이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아무것도 없어서 즐겁나?)



도남서원은 선조 때 창건되었다가 고종시절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92년 부터 하나 둘 복원하고 있다....(합디다 -_-;)


암튼.... 뭔가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도남서원까지 가보니...


두둥....공사중!!! 아악!!! 내 이럴줄 알았어!!! 뭔가 불길했어!!



아니 이거 뭔 공사를 사대강 수준으로 다 뒤집어서 하는거야 ㅠㅠ 부분공사 부분개방 그런것도 없이 다 못들어감.

아 먼 길 달려온 사람한테 이러지 말아요....흑흑.....



아쉬운대로 사진 하나를 남기고 돌아서니 이제 어쩐다? 내 일 볼 동안 아이들을 어찌할꼬.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바로 앞이 '경천섬'이라는 섬인듯한데 다름 공들여 만들어 놓은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건너로는 잔디가 쫙 깔려있는데 새로 조성된 곳인듯 어린 나무들이 심겨있다. 아쉬운대로 와이프와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고 있으라 하고 헤어졌다.



이 '경천섬'의 용도를 대체 모르겠다. 이게 MB가 죽지도 않은 사대강을 살린다며 여기저기 파헤치며 콘크리트질한 곳중 한 곳 인듯 하다. 사대강을 찬양하는 홍보 블로그에 가보니 낙동강을 살리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생태환경공원이라는데.... (자연을 인위적으로 훼손해 놓고서 생태공원이라 칭하다니 이게 뭔 삽소린지)


서술해 놓기를 경천섬과 육지사이는 수량이 적을 때에는 모래톱이 훤히 드러나서 강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인데 이제는 일년 내내 시원한 강물을 볼수 있단다. 상주 여행에서 이 경천섬을 빼 놓으면 후회 한단다....


정말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지. 

경천섬이 위치한 곳은 낙동강이 크게 굽이치는 곳의 안쪽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모래 퇴적층이 생기는 곳.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강수량이 적으면 모래톱이 커지고 장마철에는 많이 잠기는게 당연한거지. 


그냥 냅두고 오염시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게 자연을 살리는거지 깍아내고 매몰하고 공구리질 해놓고는 생태공원이라니....뭐 모래톱이 있어서 강같지 않았다고???


서해바다 갯벌도 다 말아먹을 것들 같으니....


상주여행에서 빼먹으면 후회한다는 그 경천섬에서 대체 뭘 하고 시간을 떼웠냐고 나중에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나무그늘도 없어서 아이들과....



사방치기 하고 놀았다 한다 -_-


아이들이 노는동안 이 방대한 공원에는 다른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혈세를 퍼먹은 유령공원.

정말 상주분들이 이 공원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걸까?


이 섬의 용도는 이 근처를 여행하시는 분들이 근처 높은곳의 전망대에서 저물녘의 섬 사진을 찍은 후 SNS에 올리며 '아름다웠다' 라고 말하는데 사용되는 듯. 낮에도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데 밤에 조명까지 켜지고.....뭔노무 야경사진들은....








섬이고 강이고 물이고 뭍이고 좀 냅둬!!! 냅둬!!!! 안 건드리는게 살리는거야 좀 냅둬!!!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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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비, 정순왕후의 릉인 '사릉'은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릉인근에는 광해군묘와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묘, 광해군과 임해군의 친모이자 선조의 후궁인 공빈김씨의 성묘, 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가 묻힌 안빈묘가 있습니다.


요즘은 올레길, 둘레길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걸으며 왕릉 탐방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닐까 싶습니다. 사릉이야 조선왕릉 중의 하나로 다른 왕릉들과 같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니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작년 까지는 비공개 능역중 하나였으나 올해부터 개방하여 현재(2013년)는 임시 무료개방 중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릉을 제외한 다른 곳들이 왕과 왕비의 '릉'이 아닌 '묘' 이기 때문에 관리나 관람, 방문등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 입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이 찾아가는 길인데 그나마 광해군묘는 찾기가 쉬운 편입니다. 그런데 임해군묘와 성묘, 안빈묘 등은 알고나면 그리 어려지 않은데 모른채 찾아가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사릉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소가 '산'이므로 주소를 찍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안빈묘와 성묘의 경우는 검색하면 지도에 나오기는 하는데 '산' 번지의 특성상 진입로를 알기가 애매합니다.


저도 임해군묘와 성묘는 검색을 통해 미리 다녀오신 분들의 설명을 충분히 참조하고 길을 나섰는데도 다소 헤메야 했습니다. 심지어 원래 이쪽 동네를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안빈묘는 아직 방문 전)


그래서 이 묘들의 방문길을 단 하나의 게시물로 설명하면 좋겠다 싶어 글을 씁니다. 다른 분들은 좀 더 쉽게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우선 검색을 통해서든 자가용을 끌고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사릉'이 가장 찾기 쉬우므로 출발점은 '사릉'으로 부터 설명합니다.


편의상 사릉을 A, 광해군묘를 B, 성묘를 C, 임해군묘를 D, 안빈묘를 E로 표기하여 이 묘들로 접어드는 길목을 해당 알파벳에 번호를 붙여 표기합니다. (아래 참조)



일단 위와 같이 전체적인 위치를 파악하고나면 이미 절반이상 길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붉은 실선으로 표시한 길이 주요동선이고 초록으로 표시한 길이 각 묘로 접어드는 샛길 입니다.


A. 사릉(단종 비. 정순왕후)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108. 

서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송파, 강동, 노원, 중량 쪽에서는 30~40분 안팍으로 방문이 가능합니다. 작년까지 미공개능역 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주차장은 없으나 진입로앞쪽에 십여대 주차가 가능합니다. 방문객이 워낙 적은 릉이기 때문에 주차할 곳이 모자라는 일은 아직은 별로 없습니다.


[사릉 방문기]


여기서 광해묘로 갑니다.


B. 광해군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9

사릉을 바라본 상태에서 우측(금곡, 홍유릉 방면)으로 400여 미터 걸으면 송능삼거리 입니다.(위의 약도 참고). 이 송능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 다른 묘들로 가는 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로드뷰 입니다. 사릉에서 400여 미터 진행해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면 좌측에 '송능2리'표지와 갈색으로 '광해군묘' 방면을 알리는 표지판도 있습니다. 이제 이 길로 쭉 1.5km정도 직진하면 광해군묘가 위치한 '영락교회 공원묘지' 입구가 좌측으로 보입니다.



공원묘지 안으로 들어가면 광해군묘, 진입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임해군묘와 성묘 가는 길 입니다. 진입하면 예상밖의 꼬불꼬불한 난코스가 기다립니다. 흡사 옛날 대관령 고개를 방불케 하는 고갯길 입니다. 한 600미터 정도 가야 되는데 광해군묘 까지는 그냥 차를 타고 가시는게 좋을듯 합니다.(맨 위의 지도에서 B1의 시작점이 이 공원묘지 입구입니다. 그리고 B1으로 표시한 길 자체가 다 고갯길 입니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왔다 싶으면 곧 위 사진처럼 좌측에 광해군묘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사릉관리소 관할인데 저 초록 철망을 닫아놓지만 잠그지는 않습니다. 차는 마땅히 댈 곳이 없으므로 길에 붙여서 대 놓으면 차량 통행에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공공도로가 아니라 공원묘지내 도로라 차가 많이 다니진 않습니다.


[광해군묘 방문기]


C. 성묘(공빈 김씨)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5

이제 아까의 공원묘지 입구에서 부터 다시 설명 하겠습니다. 공원묘지로 진입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여 약 600여 미터 진행하면 아래와 같은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 곳이 갑자기 길이 좀 넓어지는 곳이고 옛날집이라는 식당도 있고, 성묘진입로를 알리는 표지판도 있으니 알기는 쉽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직진(직직;;;아님)하면 임해군묘와 봉인사 가는 길입니다. 성묘를 가기위해서는 초록색으로 표기한 우측길로 접어 듭니다. 곧 시끄러운 개 두 마리가 반겨줄-_- 겁니다. 제가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고서도 가장 많이 헤맨곳이 바로 이 곳을 지나서 입니다. 그래서 아래 약도를 따로 준비했습니다.



자 붉은 길은 아까 초입의 송능삼거리에서 계속 직진한 길 입니다. 초록색이 갈라져 나오는 길이 좀 전에 설명한 갈림길 부분입니다. 강아지 두마리가 짖는 집을 지나면서 길은 좌측으로 꺽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우측으로 다시 길이 꺽이는데....

그곳에는 집이 두채가 마주보고 있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멘붕......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


다음 로드뷰에도 안 나오는 지역이라 미리 확인 할수가 없습니다. 아래 사진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집 두채가 마주 보고 있고 길이 없습니다. 

이쪽에서 한참 왔다 갔다 하다 위 사진의 우측집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는 아주머니 한테 여쭤보니 집 마당을 통해 뒤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_-;;;;;  이게 원래 길을 마당처럼 쓰고 있는건지, 마당으로 길이 나 있는 건진 모르지만 암튼 정말로 마당모퉁이를 도니 그대로 길이 연결됩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막다른 집과 마당으로 통과하는 길 입니다. 조금만 걸어가다보면 좌측으로 풍양조씨시조묘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보입니다. 돌계단을 오르면 풍양조씨 시조묘가 있고 그 윗쪽으로 성묘가 보입니다.


D. 임해군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6

다시 성묘의 진입로였던 곳으로 되돌아가 그대로 직진하겠습니다. 대략 300미터 정도 올라가다 걸어가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장소가 나옵니다. 시냇가 농장이라는 사슴농장이 보이고 좌측 샛길 입구에 임해군묘입구 표지석이 있습니다.....만!!! 

이쪽길로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예전에는 이쪽길을 통해서 어디 건물 뒷편으로 진입로가 있었다는데 새로 진입로가 났습니다. 표지석 따라 좌측길로 가지 마시고 그대로 직진 하시면 됩니다.



사슴농장을 조금만 지나면 아래처럼 우측에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다리 같은게 있습니다. 이곳이 보이면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새로 나 있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란 말이 아니라 다리 맞은편인 좌측에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조금 가파르긴 한데 그리 많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길을 새로 내고 잘 다져놓지는 않아서 페인 곳이 많습니다.




E. 안빈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66

안빈묘를 가기 위해서는 다시 송능삼거리 방면으로 나와야 합니다. E1, E2 지점 어디서든 진입해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두 길이 E3에서 만나게 됩니다. 차를 가져가셨으면  E1쪽으로 가시는게 더 낫습니다. 


아래사진에서 우측길이 지도에 표시한 E1길인데 평내차량기지 방면길이라 차량통행이 별로 없으니 그쪽라인에 차를 대시고 걸어가시는게 좋습니다.


아래사진은 E2 지점 입니다. 고모네콩탕 이라는 식당 간판이 보이네요.



E1으로 진입하신 경우 쭉 직진하면 평내차량기지로 가게 되니 마찬가지로 고모네콩탕 간판이 보이는 좌측 샛길로 들어갓야 합니다. 그럼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인 E3가 아래 사진 입니다.



저 화살표 방향으로 가시면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를 지나서 안빈묘라고......합니다. (안빈묘는 저도 아직 못가봤습니다 -_-;;)

안빈묘의 경우는 올라가 볼 수 없어서 먼발치에서 봐야한다고.....(합디다;;)


도움들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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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정순왕후가 두 분이 계시다. (고려시대에도 한 분...)


내가 왕후까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정순왕후는 기억을 할 수 밖에 없는 굵직한 사건과 연관된 분들이다.


한 분은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로 단종의 정비, 다른 한 분은 정순왕후(貞純王后 金氏)로 순조를 수렴청정한 것으로 유명한 영조의 계비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비운의 왕비로 회자되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잠들어 있는 사릉(思陵)이다.




사릉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사릉이 있는 곳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의 동네들을 실제 지번과는 상관없이 사릉이라고 지칭하곤 하는데 결혼전에 그 사릉에 거주하기도 했었다. (그니까...불광동 일대를 그냥 '연신내'라고 하듯이) 현재 주변에 있는 경춘선의 이름도 '사릉역'이다.


그러니 한때는 거의 매일 사릉 코앞을 왔다갔다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릉 바로 앞 도로를 다니면서도 그곳이 사릉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릉입구와 도로 사이에 폭이 약 10여미터 되는 녹지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 가려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 지면 비로소 사릉의 입구가 보이긴 하는데 어차피 작년까지 비공개릉 이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들을 태우고 그 앞을 지나던 중 '사릉 시범개방' 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급히 차를 돌려 방문.

수년을 지나다니면서도 볼 수 없었던 곳에 비로소 입장하게 되었다.



이때가 2013년 3월. 잔디가 아직 누런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복방과 수랏간의 흔적은 찾지 못했고, 아담한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조선왕릉이 등재되면서 시범개방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입구에 관광버스 한대가 서 있고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우르르 신도를 밟고 가는 사람들 뒤로 관리하시는 분이 '가운데로 가시면 안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분은 팩소주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권한다.....하아.....



릉 주변엔 비교적 어린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처음부터 자연지형이 그랬던 것인지 훼손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측면에서 찍은 강(언덕)은 눈에 띄게 굴곡이 있다. 혹자는 정순왕후의 인생굴곡과 비유하기도 한다. 사진 우측에는 예감과 예감 뚜껑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예감뚜껑은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라 한다. (보통은 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남아 있기 힘들다고...)


해질녘 집에 가는 도중 잠시 들른터라 길게 있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아마도 7월쯤 이었던것 같다. 큰 녀석만 데리고 다시 사릉을 찾았다. 이렇게 즐겁게 같이 다녀주니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정순왕후 송씨는 열 다섯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 한 후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됨에 따라 정순왕후 또한 군부인으로 격하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동대문 밖에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렵게 살던 그녀는 세조가 내리는 식량과 집을 끝내 거절하고, 동네 부인들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청계천의 영도교(永渡橋)에서 단종과 이별한 그녀는 죽을 때까지 단종과 재회 할 수 없었다.


영월로 유배를 갔던 노산군(단종)은 끝내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고 만다. 노비의 신분으로 강등된 정순왕후는 82세로 생을 마쳤는데 조선왕비중 2번째로 긴 수명이었다. 어릴적 그 파란을 겪고 남은 생이 어떠 했을지.....


세조(수양대군)는 일말의 미안함이 있었는지 그녀를 신분은 노비이나 노역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다. (일설에는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가 노비 신분의 정순왕후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 한다)


(정순왕후 송씨의 생애는 위키백과 참조 http://goo.gl/UDIio2 )



지난 3월 방문때의 누런 때를 벗은 잔디는 초록이 찬란했다. 소나무의 개체수는 많았으나 아직 어린탓인지 원래 품종이 그런 것인지 여리고 갸냘픈 느낌이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긴 시간이 흘러 숙종 24년 비로소 복위되어 '사릉'이라는 능호를 받게 된다. 사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특이한 점은 릉 주변의 소나무 숲 사이로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무덤들이 군데군데 보인다는 점이다. 원래 릉 주변에는 가옥이나 다른 무덤을 쓸 수 없다. 그러나 정순왕후의 장례는 대군부인의 예로 치뤄졌었는데 이미 친정도 몰락한 후라 단종의 누나인 정혜공주 시가인 해주정씨 묘역에 묻히게 된다. 살아서도 고단하고, 죽어서도 고단한.....


그 후 복위와 함께 능호를 받게 되지만 정순왕후를 보살핀 공을 생각해서인지 주변의 묘들은 이장되지 않고 남아 있다. 정말 그 공을 높이사서 남겨 두었던... 단지 신경쓰지 않아 그리 되었건, 정순왕후에게는 이 편이 좋을듯 하다. 자신을 받아준 정씨 묘역이 자신 때문에 이전되면 맘이 편치 않을 듯.



능 주변 뿐 아니라 곳곳이 어리고 여린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 울창하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다. 알고보니 사릉의 능역 자체는 작은데 우측으로 넓은 부지가 있는데 이곳이 전통수목양묘장이다. 어린 소나무들이 이곳에서 묘목으로 자라나 전국의 궁.능.원에 식재되고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를 위해 사용된다 한다. 


그런 내막을 알고 나니 세조가 잠들어 있는 광릉이 떠오른다. 광릉은 정순왕후가 잠든 이곳 사릉에서 불과 약15키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자동차로 30분 거리. 살아생전 단종과 정순왕후를 죽음과 비통함으로 내몰은 세조의 광릉에도 사릉에서 자란 수목들이 식재되고, 보수에 사용될까? 이미 세상에는 없지만 세조는 그렇다면 어떤 마음일까.....하는 생각들.



울타리를 쳐 놓아 봉분근처까지는 올라 갈 수 없다. 지난번 방문과는 달리 신도앞에는 안내 팻말이 있어 사람들이 올라가지 않는다.


아...정자각마저도 작다. 릉이 작으니 정자각인들 클 수 있으랴만은....



아래에서 바라본 봉분과 강. 굴곡이 뚜렸하다. 석물들 또한 무석인은 없고 전체적으로 작다 하는데...올라갈 볼 수 없으니 아쉽다. 관리하시는 분께 물어보니 '뭐 여기서 다 보이는데 올라가서 뭐하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쩝...일반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어찌 절차를 밟으시라 설명...할 줄 알았는데.... 



사릉의 비각.



지난번 멀리서만 찍었던 예감을 가까이서 다시 찍었다. 두조각으로 쪼개져 있는 듯 한데 마침 새 두마리가 각각의 조각에 앉아 있다.



이렇게 소나무가 늘어선 옆길이 있다. 길이 길진 않으나 잠시 천천히 걸어보고 반대편길인 전통수목양묘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왕릉에 가면 아이들과 같이 돗자리 깔고 잠시 쉬다 오는걸 즐기는데 사릉의 경우 일단은 임시개방인 상태이고, 규모에 따라 잔디밭도 크지 않다보니 왠지 그럴수 없는 분위기이고....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정통수목양묘장에선 이렇게 어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것보다 더 어린 묘목들도 있고, 좀 더 큰 묘목들도 있다. 다른 왕릉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릉만의 색다른 풍경이다.



재실은 관리사무실로 사용중인지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문 틈으로 훔쳐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릉인 장릉에는 사릉에서 가져와 심은 소나무인 '정령송'이 있다 한다. 두 분의 한이 조금이나마 가실까? 개인적으론 지금이라도 두 분을 함께 모시면 어떨까 싶은데 아마 남양주와 영월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건 쉽지 않겠지...

(실제로 그런 의견이 나온바 있으나 무산되었다 한다)


사릉은 내 자주 지나다녔으니 훗날 영월의 장릉에 가게되면 단종께 꼭 안부라도 전해 드려야겠다.








[사릉을 가시려는 분들께]

* 사릉 주변에는 가까운 거리에 광해군묘, 임해군묘(광해군의 형), 성묘(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의 친모인 공빈 김씨묘), 안빈묘(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묘]가 있습니다. 함께 돌아보시면 좋습니다. 아무래도 릉이 아니다보니 안내가 자세하진 않은데 먼저 찾아본 분들이 설명을 해 놓은 글들을 보고 저도 찾아가 봤습니다. 


하지만 나름 그쪽 지리를 알고 있는 저도 좀 헤메게 되더군요. 조만간 언급한 묘역들을 정리해서 약도를 한장 만들어 올려야 겠습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거리에 고종과 순종을 모신 홍릉.유릉도 있지만, 홍유릉과 광릉은 따로이 방문 하시고 사릉지구에서 관리하는 묘역들을 트레킹코스로 묶어 하루방문 하면 딱 좋습니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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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허브아일랜드

  - 주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정리 517-2

  - 입장료 : 성인6,000원, 어린이4,000원(37개월~중학생)

  - 허브아일랜드 홈페이지 : http://www.herbisland.co.kr/


지난 여름....그게 정확히는 8월인지 7월인지는 가물가물한데 암튼 이슬비가 왔다 갔다 하던 여름이었다.



허브아일랜드는 우리가족의 단골 나들이 장소중 하나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간난아이 때, 유아때......모든 연령에서 허브라일랜드 방문사진이 남아 있다. 매년 방문했다는 얘기....


작년 연휴때였던가 어린이날 때였던가....설마 하고 갔다가 차들이 너무 몰려서 고생한 이후 오랫만에 방문.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었다. 새벽에 내렸던 비는 그치고 일단은 개인 상태였는데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뿌릴듯. 야외공간이 많은 허브아일랜드의 특성상 일종의 모험이었던 나들이. 결과적으론 중간에 비가 조금씩 뿌리긴 했지만 많이 오진 않아서 나들이에 큰 지장은 없었다.



날씨 탓인지 널널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돌아서니 아이들은 이미 루돌프에 탑승.



지난번엔 없었던것 같은데 새로 생긴듯 하다. 몇년동안 꾸준히 찾다보니 바뀌는 모습도 계속 보인다. 처음엔 없었던 이 아래쪽으로도 대형주차장이 생겼고 그 주차장 뒷쪽으로는 '허브힐링센터'가 생겼는데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 힐링체험과 숙박시설이다.


암튼 허브아일랜드는 갈 때 마다 주변을 계속 확장해 나가는 듯.


날이 우중충 하므로 바로 식물원으로....



이 곰돌이 푸, 피글렛, 티거와 함께 찍은 사진은 거의 매년것을 갖고 있다. 5살 때 와서 찍은거, 6살 때 와서 찍은거.... 원랜 티거도 같이 있었던것 같은데 티거만 약간 떨어져 있다. 



헐~ 바나나 한 뭉텅이 발견. 사람들이 따가지 못하게 망으로 씌워놓은듯 하다. 우측의 나무는 흡사 죽부인처럼 자라는....


<여기까지 와서 산타할아버지와 독서하는 쭌>


허브식물원을 관통해서 뒤로 나가면 정원이 나온다. 정원을 둘러싸고 작은 샵들과 체험관 같은게 몇개 있고 아래쪽에는 당나귀 체험을 하는 곳이 있다. 이곳도 예전에는 없었는데 계속 공사를 하고 있는 듯. 많은 비가 온 직후라 흙길 곳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당나귀는 한번도 태워준적이 없었고 원랜 아이들도 무서워 했는데 뭔 바람이 불었는지 태워주고 싶었고, 아이들도 타고 싶어했다. 먼저 친해지라고 먹이주기 부터. 먹이는 사서 줘야 함. 당근을 긴 꼬지에 끼워 주는데 여러 녀석들을 골고루 주려고 했더니 맨 앞에 있던 놈이 졸졸졸 쫓아 다니며 입을 내민다. 



당나귀들이 워낙 순해서 재미나게 탄다. 이렇게 혼자 타는 것도 있고 둘이 같이 탈 수 있는 마차도 있다.



둘째 녀석도 싱글벙글. 타는 도중에 비가 내려서 주인아저씨와 엄마가 우산까지 씌워줬다. 아주 호강 한 날이다. 워낙 즐거워 하니 태워주길 잘 했다 싶었다.



당나귀 체험장 앞에서 하트에 글을 써와 산책로 철조망에 달았다. 여기저기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는데 우린 좀 뜸한 곳을 찾아서 주르륵.



이쪽 정원은 여기저기 산타할아버지가 많이 있다. 정원의 테마가 크리스마스인듯?? 둘째 녀석은 시키지 않아도 쪼르르~ 달려가서 폼을 잡는다.



다시 식물원으로 들어와 마저 구경을 끝내고 내려와서는 빵집에서 마늘스틱?을 사들고 옆길로....

우리 어린시절 거리를 조성해 놓고 있다. 예전부터 하나씩 만들고 있던데 이젠 바닥까지 깔아서 나름의 테마를 완성한 듯.


(마늘스틱은 갈수록 맛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이젠 마늘맛은 커녕 마늘 향도 별로 없는 듯. 처음엔 맛있었는데. 파주 프로방스마을이나 헤이리에 있는 '류재은베이커리'의 진득하고 진한 마늘빵이 생각나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긴 할텐데....암튼 예전만 못하다!!)



이렇게 옛날교실도 있고, 추억의 불량식품?을 팔기도 하고. 추억이란 주제는 어디서든 먹히는 모양이다. 헤이리에도 인사동에도....

옛날에 했던 뱀주사위 놀이가 있었는데 안그래도 애들하고 하고 싶어했는데 가격이 비싸서 사진 않았다. 집에서 대충 그려서 하는걸로.


< 꽃과발.jpg >



'향기가게'는 각종 허브관련 소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목덜미에 허브에센스?를 발라준다. 허브차도 시음 할 수 있다.

여기 맞은편에도 원래 실내가 긴~ 허브&기프트 샵 같은게 있었는데 헐? 어...없어졌다?? 



위의 사진이 아마 그 흔적인듯? 아이들과 그 안에서 찍었던 사진이 많이 남아 있고, 지난번 왔을 때도 아이들은 재밌게 봤는데, 뭔가 새로 지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냥 철거한 것인지 철골만 저렇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테마는 베네치아 인듯 하다. 중앙 데크를 중심으로 물길이 둥글게 있고 곤도라체험을 할 수 있다. 이날은 날씨 탓인지 사람도 없고 샵도 오픈한 곳이 별로 없고, 곤도라체험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우려했던 비는 잠깐 흩뿌리다 그쳐서 다행이었다. 닫혀 있는 곳이 많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사람들도 더 적었고 유유자적 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 큰 녀석은 출발하자마자 떡실신. 둘째는 아직 버티는 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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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허브아일랜드 이야기]



이건 예~전에 왔을 때 찍은 사진. 작년이었던가??



마찬가지로 작년에 곤도라 체험 하는 아이들. 실제 곤도라를 탄건 아니고, 오리배처럼 폐달을 돌렸던 것 같다.



ㅎㅎ 이것도 작년에 찍었던 푸와 피글렛!! 




[ 더 옛날의 허브아일랜드 이야기 ]



두둥... 이때가 아마도 2010년인가?? 둘째가 이제 좀 걷게 되어 밖에 다닐 때 두녀석이 꼭 손을 잡고 걷게 하던 때였다. 아이들이 둘다 아기였고 반짝반짝 이쁘던 때였지. 



어디를 가든 동생의 손을 잡고 가는 형아.



여기가 지금은 철거되어 없었던 그 허브샵 건물.... 여기서도 손을 꼬옥.



더더~ 옛날의 푸와 피글렛!!! 더더 엣날의 아이들 ㅠㅠ (티거도 이때는 뒤에 같이 있었다!)



이뻐라...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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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통일전망대 방문 후 아직 저녁시간까지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그냥 집에 가기도 아쉽고 해서 한번도 안가봤던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여주 신세계 아울렛에는 몇번 아이들과 함께 갔었는데 파주는 한번도 안가본 터였다. 우리집에서는 파주나 여주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는데 규모가 원래 있던 여주 아울렛이 더 크다 하니 굳이 가볼 필요도 못 느꼈고.


그런데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정말 가까웠다. (통일전망대까지 갈 때 신세계 아울렛 앞에서 유턴해서 조금 가다보니 통일전망대 주차장이 나왔었다)



사실 여주든 파주든 아울렛에 간다는 것은 아빠나 아이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다 -_-;;; 엄마가 신나는 일이고 보통은 내가 아이들을 맡아서 방황-_- 하고, 간만에 엄마는 혼자 돌아 다닌다. 근데 뭐 이게 엄마한테는 그럼 마냥 좋냐....그건 또 아니다. 거의 대부분 아이쇼핑이지 뭘 사는 일도 없다. (쩝...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사본게 몇년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흑...)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번 갔던 여주신세계아울렛의 기억이 아이들한테 좋게 남아 있던 것은 바로 이 '젤리벨리'의 힘이다. 저걸 몇개 사서 들고 다니다가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 쯤 하나씩 입에 넣어주면 아이들 한테는 달달한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듯 하다.

(저것도 어차피 사봐야 3천원 정도만 -_-;; 열라 비싸)



그냥 시간이 좀 남아서 들렸을 뿐이라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신세계파주 아울렛의 독특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길게 조성된 중앙정원을 아울렛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데 외부와는 시야가 단절되고, 정돈된 중앙정원만 조망된다. 그렇다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건물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하늘은 열려있다. 시간속의 섬. 그런 느낌이었다. 바쁜 시간의 흐름이 잠시 느리게 가는 공간 이랄까.


이날은 중앙정원에서 성악공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해질녁 시간속의 섬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아이들 엄마는 테팔에 후라이팬 보러 가고, 아이들과 나는 레고매장으로. 아울렛이든 뭐든 레고는 가격이 너무 후덜덜해서 살 엄두도 못내고 구경... 울 애들도 그냥 구경... 여기저기 떼쓰는 아이들 천지인데, 울 애들은 사달란 소리 한마디 못하고 그냥 구경...


커다란 박스를 하나씩 들고 나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며 입맛만 다시는게 맘이 안 좋아서 걍 애들을 데꼬 나왔다. 

쫄랑 쫄랑 따라오면서도 왜 안사주냐고 조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이라도 더 하고 싶은데...하며 아쉬워 할 뿐.


"아빠? 왜 우리는 맨날 안사요?" 


작은 놈이 눈을 빤짝거리며 묻는다.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거기서 젤 작은거 하나씩만 살까?"


" (o_0)!!!! 네!!!!! "


나오면서 보니 카운터 근처에 박스도 아니고 작은 봉투에 포장된 제품이 있는데 속에 레고 캐릭터(사람 하나)가 랜덤하게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꼴랑 레고 캐릭터 하나. 그거라도 사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럼 아빠가 사자고 하는거 사기다?"


"네! 네!!"


이 아이들을 우얄꼬... 암튼 그 쪼끄만 사람-_- 레고 하나가 하면 뭐 얼마나 하겠어. 천원이나 천오백원이나 하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열라 비싸!!!! 그거 꼴랑 두개 올려 놓고 가격 듣는 순간 딸꾹질 할 뻔 했음!!! 야 이 인간들이 가격을 써 놓으라고!!!!


암튼 그런 곡절끝에 그 쪼끄만걸 들고 룰라랄라~ 거리며 좋아하는 녀석들을 보니 그래도 사주길 잘 한것 같기도 하고....

자꾸 뜯어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재촉에 벤치에 앉았다.


"형아~ 키마 나왔으면 좋겠다~ 그치~?"

"닌자고 나오는거 아냐~?"


둘은 이러면서 기대감 상승....그...그런데 나온건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거 뭐야?' 싶은 트럼펫 부는 아저씨와 왠 농촌처녀. 아이들은 실망 했었을 텐데도 그 상황이 재밌는지 '아~ 이게 뭐야~' 하면서도 깔깔깔깔 웃으며 숨 넘어간다.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광장쪽을 보니 카피 같은걸 파는 곳인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런데....'음?' 저게 뭐지?? 하며 살펴 보다가 아이들이 들고 있는 농촌-_-처녀 레고를 번갈아 봤다. 뭐야 이거 난 이게 무슨 서양 농기구 같은건가 했더니 이게 빵이었어??? 그렇다 -_-; 레고 캐릭터가 들고 있던게 바로 프레즐이었고 밑에 마침 프레즐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이게 빵이래!! 우리 이거 사먹을까?"



큰 녀석이 줄을 섰다. 두근두근....



하나 사서 네 가족이 얌얌....



이날도 여전히 산 것은 없고 그저 아이쇼핑. 뭐 어쨌든 아이들에겐 여주 아울렛이든 파주 아울렛이든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사달라고 떼써도 맘 아프고, 안 써도 맘 아프고 글타.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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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산 통일전망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59)

- 방문일 : 2013년 9월

- 입장료 : 어른 3,000원, 학생 1,600원, 경로.유치원 1,000원

- 주차료 : 승용 2,000원(통일동산 공용주차장)


파주쪽은 우리가족 단골나들이 지역이다. 집과는 거리가 꽤 있음에도 가는 도로가 막히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은 내가 선호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같은 두시간 운전을 해도 씽씽 달리는 2시간과, 막히는 도로의 2시간은 피로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운전자라면 다들 알 것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파주쪽이 당일 나들이 하기 좋은 곳이 많기도 하다. 헤이리예술마을도 그렇고 프로방스 마을, 임진각과 평화누리공원, 신세계아울렛도 있으니 말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위에 열거한 곳들을 가며 오며 항상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9월. 여름인지 가을인지 알 수 없는 주말 아이들과 함께 방문.


모르고 갔는데 오두산 통일전망대 까지는 단체로 온 버스가 아니면 승용차 진입이 불가하다. 진입로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통일동산 공용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셔틀버스는 무료이고, 통일동산 주차장은 소형차 2천원의 주차요금이 있다)



주말이 아니면 찾는이가 그리 많지 않을듯 하다. 주차장은 넓고 자리는 넉넉하다. 그리고....뭔가 황량한 느낌.

아무튼 저쪽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배차간격은 15~20분 정도이다. 



사촌누나 한테 얻은 둘째 녀석의 선글라스. 티 안내는 척 하지만 은근히 좋아한다. ㅎㅎ

버스를 타면 통일전망대 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분이내 걸리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를 하고 들어서면 바깥쪽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셨고 해방 후 김일성에 의해 희생되신 고당 조만식 선생의 동상이 있다. 동상 뒷편으로 바라보면 북한땅이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것은 동상 주변에서 잡은 잠자리.


- 잠자리는 잡으면 잠시 갖고 있다가 놔준다. 보통은 돌맹이나 작은 지푸라기 등을 움켜쥐게 하는 놀이를 한다. 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끼우고 잠자리 다리를 작은 돌에 가져대면 잠자리들이 이 돌맹이를 움켜쥐는 습성이 있다. 아이들한텐 참 신기한 일인가 보다. 오래잡고 있지 않고 놔주게 하는 것은 손가락 사이에 오래 끼고 있으면 그 힘이나 특히 땀에 의해 날개가 상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2~3분 정도 잡고 놀면 놔준다. 처음 잡았을 때 이유를 설명해주고 그리 하게 했더니 아이들이 알아서 잘 한다 -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입구이다. 건물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다. - 하긴 북한이 코 앞인 전망대 용도의 건물을 크게 지을 필요는 없지.



통일전망대 건물로 들어서 로비층에서 기념사진 한 방. 



1층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기념 사진전 같은게 하고 있었다. 예전에 처음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 봤던 티비화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이산가족이 뭐예요?'


묻는 큰녀석에게 우리가족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었다. 아득한 표정이 되던 아이는 '그냥 만나면 되잖아요' 한다.

그래 그냥 만나면 되는 일이지. 초등학교 1학년이 아는 것을 남과 북의 어른들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지.


중앙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과 문장이 있는데 윤보선, 최규하 2명의 전직 대통령은 빠져 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해선 내가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선입견을 줄 듯 해서 깊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야 하나의 핏줄이 대를 이어 왕이 되니 좋은 왕, 나쁜 왕, 이상한 왕들이 복불복으로 나올 수 있다 생각하지만 국민들이 뽑는 대통령들 조차 그런 것을 보면..... (하긴 심지어 몇은 국민들이 뽑지도 않았지)



이제 계단을 올라 3층의 전망대로 들어섰다. 북한쪽을 향해 있는 쪽은 전체창으로 조망이 수월하게 되어 있고, 망원경들이 늘어서 있다. (500원 -.-) 이 조망용 망원경들은 이곳 뿐만 아니라 옥상과 외부 테라스 곳곳에 있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조망되는 지형을 설명해 놓은 상황판을 보면 주변 지형이 쉽게 이해된다. 오두산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역으로 울 큰아이 머리쪽이 한강쪽 건너편인 김포시 하성면이고, 사진 윗쪽이 북한땅인 황해서 개풍군이다. 


통일전망대쪽의 강가에서 북한땅은 직선거리로 약 2km 남짓이고, 임진강 윗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사진상의 우상단) 그 폭이 겨우 400미터 남짓이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이면 충분히 헤엄을 쳐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강의 하류로 조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얼마전 월북을 시도하다 사살된 남성이 바로 이곳을 통해 북으로 건너가려 했다. (사살된 것 갖고는 외국에서는 '뭐 북한이랑 남한이랑 똑같네?' 하는 반응이라는 말이....)



열심히 지형도를 보며 토론? 하는 아이들. 

이 지역은 지형의 특성 때문에 지금도 군사적요충지이지만 삼국시대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현재도 오두산성의 흔적이 남아 백제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관미성이 바로 오두산성일 가능성도 높다 한다.



지형 해설이 나온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자리에 아이들과 자리에 앉았다. 해설은 눈앞에 조망되는 지형을 기본으로 설명되므로 쏙쏙 귀에 들어온다. 가급적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건너편의 북한 땅에도 마을이 있는데 완전민가는 아니고 선전용가옥이나 군인들의 관사들이 많다 한다. 그나마 최근 심화된 북한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붕이 없는채로 방치된 가옥들도 있다고 한다.



날이 비교적 맑아 육안으로도 북한땅이 선명히 보이고 망원경으로 살피면 집들은 물론 사람까지도 관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기척은 별로 없다). 통일전망대를 방문 하실 분들은 날씨를 미리 확인하고 가는게 좋을듯 하다. 여기까지 와서 '저 안개속 어딘가 있으려니....'하고 가면 얼마나 아쉬울까.



이렇게 바깥쪽에서도 또 보고, 보고.....



위와 같이 강바닥이 많이 드러나 더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사진 윗쪽의 손에 닿을 듯한 곳이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



옥상에서 반대쪽을 보면 저 멀리 언덕위에 커다란 기와 건축물이 보인다. 이곳도 오며가며 계속 봐왔기에 무슨 곳인가 싶었는데....

아직 미완성인 '고려역사관(고려대전)'이다. 이곳은 원래 역대 고려왕의 위패를 모시고(조선의 종묘정전과 같은...) 박물관 같이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는데 예산확보를 못해서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한다. (그 시작이 1995년이었다 하니 몇써 십몇년째 지지부진.....)


고려는 바로 조선의 전신이고 조선과 비슷한 500여년의 기간동안 왕조를 이어왔는데, 조선은 물론 삼국시대 보다도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 같다. 정말로 생각해 보니 그렇다. '태정태세문단세.....'는 다 외우면서 고려의 왕은 태조 왕건이나 망하기 직전인 공양왕, 공민왕, 우왕, 창왕을 빼면 아는 왕들이 없다. 그나마도 이름이나 아는 거지.


정말로 어째서 이렇게 고려사가 방치되게 된걸까? 여러가지 이해타산의 문제는 있겠지만 저정도로 건물이 올라간 이상 중앙정부에서도 지원책을 마련해 완공해 줬으면 좋겠다. 


백제박물관도 여기저기 있고, 신라박물관도.... 심지어 가야박물관도 있는데 변변한 고려박물관을 본적이 없는것 같다. 가을이면 여기저기서 백제문화축제도 하고 그러던데. 다시 생각해 봐도 참...고려사는 왜 이리 잊혀 지고 있는건지. 



전망대 조망후에는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분단의 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공간에는 우리 뿐만 아니라 예전에 분단국에이었던 독일과 예멘등에 대한 설명들도 있다. - 내가 어릴적만 해도 동독/서독, 남예멘/북예멘도 있었는데 -



북한아이들의 교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내 어릴적 교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북한의 가정집을 재현해 놓은 공간. 이쯤되면 둘째 녀석은 덥고 힘들다며 조금씩 땡깡을 피우시 시작한다. 오늘의 땡깡메뉴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이 공간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한반도모양의 파란 메모지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적는 방이 있다. 온 벽이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차 있다. 

큰 녀석도 '통일이 되고 싶다' 써서 벽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두둥!' 통일의 염원속에서 고고히 홀로 빛나는 둘째 녀석의 소원을 보라.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 하는 기상이라니...크흑....




다음에는 고성 통일전망대에도 함 가봐야겠다. (아이스크림 먹여서....)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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쭌은 태권도에 다닌다. 아직 윤은 다니지 않는다.

그냥 뭔가 운동을 좀 시키고, 아이들과 어울리라고 보내는 것이지 단증을 꼭 따게 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난 국기원이라는 단체 자체를 싫어한다. 


터무니 없는 승급심사 비용도 그렇고 잊을만 하면 흘러 나오는 구설수도 그렇고. 좋은 이미지보단 나쁜이미지가 많다. 

불과 얼마전엔 또 자신과 사이가 나쁜 관장 아들에게 편파판정을 해서 관장을 자살로 내 몬 심판이 불과 일주일만에 복귀했지...


이 글을 보는 태권도인들은 발끈 하며 항변 할지 몰라도....'너네나 잘 하세요' 문대성의 표절사건도 그렇고, 썩은 환부부터 도려내세요.



아무튼 절대 국기원에 돈을 갖다 바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닌지 일년이 넘었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그렇고, 배웠던 흔적이라도 남겨 두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1품에 도저언~!


6월 이었는데 정말 징하게도 더운 6월이었다. 

원래 3시쯤 울 아이의 심사가 시작된다고 해서 식구들은 2시까지 갔다. 심사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의 그 열기~!!!!!! 를 아직도 기억한다. (좋은 의미의 그 열기...그런거 말고 정말 '열기', 말 그대로 열기!!! 뜨거웠다고!!!)


냉방? 그런거 없음. 아~무것도 없음. 크기도 열라 작아. 앉을데도 없어. 서 있는 사람이 반. 아래에서는 계속 아이들이 심사를 받고 있긴 한데 도대체 어느 지역이 받고 있는건지 진행 상황은 어떤지 그런거....아무것도 없어.


정말 개뿔 아무것도 없어. 동네 미용실에서도 설치하는 전광판, 안내판 그딴거도 없어. 대체 그 심사비들 받아서 다 어따가 쓰는거야? 천장에 전광판 하나만 있어도 수 많은 부모들이 그 찜통에서 고문당하진 않을꺼 아냐.



서 있기 너무 덥고 힘들어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어. 왜? 나가면 서 있는 이 자리마저 빼앗겨. 그게 아니라도 나갈수가 없어. 전광판이나 진행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잠깐 나간사이 울 아이의 심사가 진행될 수도 있어.

이건 진짜 뭔가 대대적인 감사 같은게 필요한거 아닌가 싶다. 이게 대체 말이되나. 나름 태권도의 종주국이고 그 대표기관이란 곳이 대체 어떻게 이 모양인거지?



3시쯤에 진행한다던 울 아이의 심사는 결국 6시에 진행 되었다. 

2시부터 총 4시간 동안 정말 그냥 막연히...그 찜통안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건강한 아이의 모습은 감동이었지만 일말의 기대도 없던 국기원은 내가 무엇을 상상했던 그 이하를 보여줬다. 


이곳저곳에서 동네 관장님들이 부모들한테 사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국기원에 실망하셨을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되도 않는 심사비 챙겼으면 주요 지하철에 셔틀버스라도 돌리던가, 냉방이 심사에 방해되어서 안된다면 전광판이라도 제발 설치해라.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지 말고. 시대가 21세기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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