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과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을 잇는 숲길은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기간이라 통행이 차단되어 있었다. 5월부터 개방이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일단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니 주차장 끝에 산책로가 있다.


흙길이지만 바닥이 고르게 정비되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도 나쁘지 않다.

매표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라고는 해도 사진에서 보이듯이 효종의 영릉으로 향하는 발길은 많지 않았다.

하필 나란히 있는 능이 세종대왕의 영릉이라 더더욱.....



덕분에 아이들과 오붓하게 걷는다. 중간에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어서 쉬엄쉬엄 걷는다.

식구들 모두가 북적거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조금 더 유유자적 놀며 쉬며 걸으면 좋을것을 너무 시간이 늦었다.



숲도 좋고, 길도 좋고, 날도 좋다...

그냥 완만한 산책길이라 무릎이 안 좋은 내가 걷기에도 무리 없다.



아이들은 지들끼리 깔깔대며 뛰었다 걸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기운도 좋아.



절반을 넘어 온 듯 한데 영릉엘 갔다가 다시 이 길을 되돌아 주차장으로 갈 것을 생각하니 시간도 시간이고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칭얼댈듯 하여 아이들과 엄마는 계속 길을 가고, 나는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차를 가지고 효종의 영릉으로 가기로 했다.



쉬고 있는 둘째....귀여워라. 산골 어느 절간에 있음직한 동자승상 같다.



매표소를 지나면 곧 재실이 나오는데 나처럼 잘 모르는 뜨내기 방문객이 봐도 다른 능의 재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잘 보존된 고택같은 느낌. (후에 찾아보니 조선왕릉의 재실중에선 가장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보물로 지정된 상태라 한다)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이 재실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굳이 무엇을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정갈한 느낌.

재실을 둘러보고 나갈 때 까지 방문객은 우리가족이 전부.....덕분에 고즈넉함까지....



아이들의 이정도 까불까불은 조상님들도 웃어주시겠지.



어느 별에서 왔을고 이 녀석들은....


언젠가 다시 이 녀석들이 조금 더 크고 나도 릉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한 후 다시 오고 싶다. 이 재실만을 보기위해서라도.



홍살문으로 들어선다. 



앗. 금천교가 홍살문 안의 참도 중간에 있다. 보통 금천교는 홍살문 바깥쪽에 위치한다.



해가 뉘엇뉘엇 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자각옆으로 이렇게 길이 나 있다. 공구리를 치지 않고 잔디와도 이질감이 없어서 좋은 것 같다. 



맘이 급한 나는 멀리 앞장서고 아이들은 놀며 즐기며 뒤쳐진다. 사람들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빨리 와'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인선왕후의릉에 먼저 닿는다. 기대치 않았는데 봉분 앞에까지 길이 이어져 있다. 찾는이가 많지 않으니 저 밧줄로 만든 안내선만으로도 길이 되고 선이 되는 듯 하다. 세종대왕의 영릉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 이었겠지.

쌍릉이긴 하지만 봉분이 나란히 있지는 않은 특이한 구조이다. 좌우 쌍릉을 쓰게 되면 정혈을 비켜나가게 되어 풍수상의 이유로 상하로 위치하였다 한다. 


때문에 인선왕후의릉에는 난간석은 있지만 곡장(봉분뒤의 낮은 담장)은 없다. 기본적으로는 쌍릉이기 때문에 윗쪽에 있는 효종릉의 곡장이 인선왕후릉 까지 아우르는 듯 하다.




효종 임금님 같이 사진 좀 찍어요.....내려오기 전엔 아이들과 함께 꼭 인사도 하고 옵니다 :)


영릉 입구를 통과하여 다시 나올 때 까지 방문객은 우리가족이 전부였다. 그때가 해가 지기 시작하는 5시 전후이긴 했지만 꽃피는 봄날의 일요일이었는데 말이다. 주차장에는 차가 계속 오고가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매표소 바로 앞에 약수가 있는데 모두 생수통을 들고 약수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아이들과 왕릉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동구릉에도 몇번 갔었고, 광릉에도 몇번, 사릉에도 한 번....


그런에 이번에는 좀 의미가 남달랐다. 그 이전에는 아이들이 릉과 조선, 임금의 개념도 모르고 그냥 잔디밭에 놀러가는 것이었고 나역시 아이들과 함께 숲에 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헌데 이번 영.영릉 방문 때는 릉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가는 것이니....


그런데도 부모인 나는 그저 숲에 잔디밭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듯 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가 뭔가 허전하고 아쉬운 느낌.


돌아와서 며칠동안 조선왕릉에 대해 공부했다. 살아생전만큼 죽어서도 많은 사연과 이야기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다음 방문 때에는 내가 그저 스치고 지나온 풍경들에 대해 반가이 손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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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릉은 주로 도읍인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왕이 조상을 모시러 갈 때 가급적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여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기도 하고, 한양이 도읍이었으니 한양을 중심으로 릉이 형성되는건 어쩌면 당연한듯도 하다.


세종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과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은 경기도 여주에 이웃해 있다.


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현재 주소지로 한다면 대부분 서울이나 구리, 남양주, 고양, 파주 등에 있는 능원들을 염두에 둔다면 꽤나 멀리 자리 잡으신듯 하다. - 방문 후 확인해 보니 영릉과 영릉 모두 천장(묘를 이전 함)되어 이곳으로 모셔졌다 -


안내도에서 보듯이 이름마저 같은(한문으로는 다르지만) 두 릉은 이렇게 이웃해 있다.


함께 있어서 영.영릉, 영녕릉, 영령릉으로 불리우긴 하지만 주차나 편의시설, 전시관 등의 대부분의 것이 세종대왕의 영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뭐랄까....세종대왕님은 조선 임금님들중 아이돌이랄까......





매표소를 지나면 세종대왕 시절에 발명된 관측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도 첨보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도 많다. 해시계만도 종류가 꽤 여러가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시계는 '앙부일구'라고 한다. (경복궁안에도 있고 광화문사거리 세종대왕 동상앞에도 있는 그거)




야외전시장의 반대쪽에는 동상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종대왕님과 같이 사진도 한번....

6살 8살 아이들인데 세종대왕이 대군시절 충녕이란것과 이름은 '이도'라는 것. 형들이 양녕과 효령이라는 것. 

아버지가 태종이고 그 태종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인데 이방원이 동생들을 죽이고 왕이 된것 까지 알고 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고 그의 형이 2대 왕인 정종. 이방과 라는 것 까지.


뭔가를 가르친 적은 없고 그냥 같이 옛날얘기 하듯이 얘기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역사공부라는 개념도 아니고 정말로 그냥 재미난 동화나 옛날얘기 하듯.....


요즘은 둘이 누워 잠들기 전에 자기들끼리 역사퀴즈 내고 맞추기를 하다 잠들곤 한다.


아마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 까지는 왠만한 어른들 보다 더 잘 알지 싶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게 된 경위와 사육신과 생육신들 까지 알고 있다. (단종릉인 장릉에는 아직 못가봤지만 단종비인 '정순왕후'릉인 '사릉'에도 이미 갔다왔다)



동상앞에서 한번 점프 샷. 아무리 찍어도 큰 놈은 뻣뻣하고 둘째 놈은 역동적이다.




세종대왕 영릉의 재실이다. 현재의 재실은 복원된듯 하고, 원래 재실은 매표도 바깥쪽에 터만 남아 있다.

재실 건너편에는 '세종전' 이라는 아담한 전시관이 있어서 유물등을 전시하고 있는듯 한데, 나올 때 보기로 했다.




이제 홍살문을 들어섰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참도는 가운데의 높은 곳이 '신도'라 하여 혼령이 지나는 길이고, 측면의 낮은 곳이 '어도'라 하여 왕이 지나는 길이다. 만인지상인 임금이 낮아지는 곳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참도가 가운데에 있고 어도가 양쪽에 있는 3도의 형식이다. 다른 곳은 2도였던 것 같은데??

(집에와 찾아보니 1970년대 세종대왕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잘못된 복원을 하였다 한다. 3도는 중국식의 황릉 양식. 실제로 '대한제국'선포후 조성된 고종과 순종의 '홍.유릉'은 참도가 3도로 조성되어 있다.)


릉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쉽게 알 정도면 이제라도 다시 복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잘못된건 알지만 그냥 황제릉이 좋으니까 그냥 냅두는건가?? 그렇다쳐도 왕도 걷지 못했던 신도를 저 수많은 방문객이 걷도록 두는 이유는 뭔지....

간단한 안내문이나 안내판만 있어도 좋을것을. 사진에서 처럼 참도 옆으로는 원래 나무들이 없었던 것인지 성역화 사업을 하며 밀어버린 것인지 모를 넓은 잔디밭이 있다. 그래놓고 울타리를 쳐 놓으니 신도를 밟지 않고 다니기가 더 어렵다. 이 무슨 앞뒤 안 맞는 복원인지 모르겠다.


암튼 의미를 아는 이상 신도로는 갈 수 없고, 아이들과 어도를 걷는다.



멀리 정자각이 보이고 뒷편으로 봉분이 보인다. 세종대왕릉인 영릉은 조선왕릉중 최초의 합장릉이다.

원래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서울 서초)쪽에 쌍실로 능을 조영하여 세종 승하후 합장하였으나 예종 때에 입지가 불길하다 하여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한다. (문종과 세조가 소헌왕후의 소생)



헐? 생각지도 않았는데 봉분 앞까지 올라올 수 있다. 그것도 무려 봉분 앞까지 조성된 돌계단으로;;;

팔팔한 아이들이 먼저 후다닥 뛰어 올라가 기다리고 있다. 우측은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무석인인듯 하다. 즉, 관람객들은 하계까지 올라 올 수 있다는 것....



이렇게....하계까지 올라올 수 있다. 뒤로 중계와 상계가 명확히 구분된다.



조선왕릉은 봉분이 자리잡은 상계와 그 밑으로 중계, 하계로 명확히 높이가 구분된다. 문인상은 사진처럼 중계에 위치하며 무인상은 그 밑인 하계에 위치하는데 조선후기로 가며 문무의 차별?...격차가 없어지며 같이 위치하기도 한다.




아이들 바로 뒤에 보이는 것이 장명등이고 사진 좌측과 우측에 있는 기둥 같은 것이 망주석이다. 

봉분아래를 둘러싸는 병풍석은 생략되어 있고, 난간석만 있다. 봉분앞에 있는 큰 돌테이블 같은 것이 혼유석이다. 커다란 돌상처럼 생겨서 제사를 지낼때 음식을 놓는 곳인가 하고는 한다는데, 혼유석은 봉분의 주인인 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라 한다. 또한 무덤의 입구이기도 하다. 위에 사진에는 장명등에 중앙이 가려져 마치 커다란 하나로 보이지만 영릉의 혼유석은 두 개이다. 합장릉이니까.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동그랗게 생긴 다리가 고석)


세종대왕의 영릉을 보고 내려오면 효종의 영릉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데 화재예방을 위해 5월부터 개방. 우리의 방문은 아쉽게도 4월 말이었다.



할수없이 다시 입구로 나와서 효종의 영릉에 방문하기로 하고 나오는 중에....큰 놈의 거침없이 하이킥.



아참! 나올 때 세종전에 들러서 전시물 보기로 했지!!


들어서자마자...


 '앗 이종무다!!! 아빠! 이종무예요!!!'


 헐...아이들이 그림만 보고도 나보다 더 잘 안다. 쓰시마정벌에 나선 이종무 그림이다. 이렇게 세종대왕 시절의 각종 자료들과 그 시절 제작된 편경과 편종들의 유물들이 복원전시되어 있다.


이제 날이 저물기 전에 효종의 영릉으로.....


사실 아이들도 힘들고 해도 기울어가서 그냥 갈까 했다. 그런데 예까지 와서 그냥 가면 효종께서 서운해 하실 듯 해서 언능 다녀오기로.

(다녀와서는 그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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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릉세종대왕유적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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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956-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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