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정릉.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1번지 일대

* 선릉 : 조선 제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릉

* 정릉 : 조선 제 11대 중종릉


선정릉을 방문 한건 찌는 듯한 여름의 시작이었습니다.


원래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계획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성동에 있는 어떤 회사에서 견적의뢰를 하면서 방문상담을 요청했던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견적을 내주었고 도면도 다 확인한 상태에서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 갑자기 방문상담을 요청하는데 가기도 뭣하고....안가기도 뭣한....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루종일 상담을 하고 견적을 내고 하는 일인데 방문을 요청하는 곳들을 모두 찾아다닐수도 없고, 또 방문요청을 하는  곳들이 방문할 필요도 없는 일이거나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견적내용에 관계없이 자기들 편의로 오라가라 하는 곳들이 많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미 견적을 내줬던 곳에서 제차 연락이 온 터이고 몇가지만 확인후 바로 발주를 내려고 한다 하니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차를 몰고 방문요청지에 가보니 십몇층 짜리 건물인데 그 회사소유였습니다. 그런데....주차장에 차를 못들어가게 하는 겁니다!!!

상담을 요청해서 온것이라 해도 주차장이 협소해 방문차량은 들여보낼 수 없다 합니다. 어이가 없어서 방문요청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말했더니....(당연히 경비실을 바꿔달라고 해서 들여보내 줄꺼라 생각했음)... 그럼 자기도 어쩔 수 없으니 차를 딴데 대랍니다.


????? 

강남 삼성동 한복판에서 차를 대체 어디다가 대나요??

망연자실해서 그나마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니 휭...옆으로 주차단속반이 지나갑니다. 열심히 주변을 검색해보니 도보 십여분 위치에 선정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정릉 주차장에 차를 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업체는 이미 다른 곳을 선정해 놓고서는 혹시나 가격을 좀 후려칠 수 있을까 해서 저를 부른것 이었습니다. 타 업체에서 이미 자신들 스타일에 맞게 셋팅해 놓은 것을 그대로 맞춰 달라고 하면 그걸 대체 어떻게 경쟁력 있게 해 줄수 있나요. 주차 할 곳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채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방문요청업체와의 면담을 끝내고 나올때 화를 주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정릉 주차장까지 걸어오면서도 짜증과 화가 어떻게 제어가 되지 않을 듯 했습니다.


이대로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듯 해서 가방을 차 안에 던져 넣고 선정릉의 숲으로......



선.정릉 능역에는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릉인 '선릉'과 11대 중종의 릉 '정릉'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릉이 동원이강릉의 형태라 서로 다른 3기의 릉이 있는 듯 합니다.



매표소와 왕릉역사관을 둘러본 후 조금 걷다보니 재실이 나옵니다.



재실의 바로 앞은 이렇게 강남의 한복판 입니다. 기존에 찾아봤던 다른 릉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라 이질적이기 까지 합니다. 이 때 이미 격양된 감정은 많이 차분해 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 도심을 걷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이곳에 있는 듯 합니다.



앗....정릉으로 향하는 길이 공사중 입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우수정을 설치하는 듯 합니다. 정릉은 어떻게 생각하면 조선의 왕릉중 가장 많은 풍파를 겪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릉들 이지만 그중에서도 정릉은 지대가 낮아 잦은 침수를 당했다 합니다. 더구나 임진왜란 때에는 능이 크게 훼손되기 까지 합니다. - 왜란이 끝난 후 일본이 국교 재개를 요청하자 조선에서는 능을 훼손한 이를 잡아 보내줄 것을 조건으로 하였고, 이에 조선과 왜의 중계자 역할을 하던 쓰시마도주가 조선에는 온적도 없는 일반 죄인 두명을 잡아 보냈으나 이 사실을 조선에서 알고서도 두명을 처형함으로써 마무리 지었다 합니다 -



아....가봤던 다른 릉들이 모두 낮은 구릉의 지형을 살려 완만한 강을 만들고 봉분을 조성한 후 곡장 뒷쪽으로 잉을 조성한데 비해 선릉은 지대가 낮다 하더니 능역과 봉분 전체가 낮습니다. 


아래에서 바라 볼때 이렇게 가깝게 보인 릉이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중종묘는 원래 희릉으로 고양에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곧 첫번째 계비 장경왕후의 근처로 이장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두번째 계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옮겨지게 됩니다. 문정왕후는 이곳을 길지라 하여 옮기고 훗날 자신이 그 옆에 묻히길 바라였으나 옮긴 장소가 홍수에 자주 침수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태릉에 묻히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중종 또한 왕의 무덤으로는 드물게 홀로이 단릉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랬던 것인지 조성된 시가지가 능역을 모두 갉아먹어 이리된 것인지는 알길이 없으나 홍살문까지의 진입로가 옆으로 나 있습니다. 



참도를 걷다 문득 돌아보니.....높은 빌딩들이 집어 삼킬듯 위압적 입니다. 아까 재실을 지나올 때는 막연히 도심과 참 가깝다 생각했던 마음인데... 이건 가깝다 말하기엔 너무 참담하게 능역을 침범한것 아닌가 싶습니다. 홍살문 바로 뒷쪽이 대로 입니다. 



정자각 바로 뒤에도 건물이 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훼손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유일하게 북한에 있는 후릉(제 2대 정종)의 사진을 보곤 정자각 자리까지 밀고 들어온 논밭을 보고 개탄 했는데....오십보백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본 봉분입니다. 시야를 낮추지 않아도 잘 보이네요. 확실히 다른 능보다 낮긴 낮습니다. 오르기 전 까지는 가장 가까이 보이는 능이지만 위로 오르지는 못하게 되어 있어서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봉분까지 오를 수 있는 관람로가 있을까 해서 몇번을 두리번거렸지만 안타깝네요.


이제 성종대왕의 선릉으로 향합니다.



릉 주변이 도심과 너무 가까웠던 것에 반해 선릉과 정릉 사이는 나름 울창한 숲을 이루며 떨어져 있어 한가로이 걷기 좋았습니다. 또 그 오가는 길이 언덕 그대로의 경사와 굴곡을 가지고 있어 그냥 숲길을 걷는 듯 합니다.


주변의 높은 건물도 바삐오가는 사람들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도 없습니다. 조금 전 까지의 분노와 바쁜 스케줄도 없습니다. 바로 바깥은 대한민국 서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강남 한복판인데 이곳은 마치 다른 곳인듯 합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속의 섬' 


선릉과 정릉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게 가장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우는 조선왕릉들을 방문 할 때마다 느껴왔던 한가로운 감정이었지만, 이질적인 주변 환경 때문인지 선릉과 정릉이 주는 감정은 확실히 더했던 듯 합니다.



느릿느릿 걷다보니 정현왕후릉에 먼저 도착합니다. 동원이강릉의 형식이지만 성종릉과는 꽤 떨어져 있고 광릉처럼 대칭형도 아니기 때문에 거의 독립된 단릉처럼 보입니다. 정릉과 마찬가지로 언덕배기에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커다란 봉문처럼 보이는 낮은 릉입니다.


올라가 볼 수 없나 두리번 거리니 측면에 난간석주가 묻혀 있습니다. 장마때 토사가 쓸려가며 묻힌것이 드러난 것인데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고 울타리와 안내판을 설치하여 둔것이 이채롭습니다. 현재 정현왕후릉의 난간석은 모두 온전한 상태로 과거에 보수를 한 잔재를 땅에 묻은것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난간석주 옆으로는 낮은 계단이 있어 능역위로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이질적이지 않게 잘 만들어져 있는 듯 합니다.




관람로는 측면으로 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석상의 뒷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중종릉과 성종릉의 나름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나마 도심과는 좀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다시 성종의 릉으로 발길을 돌리면 위와 같이 측면으로 오를 수 있는 관람로가 나 있습니다. 정현왕후릉과 같이 측면으로 오르기 때문에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지만 릉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관람로를 만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모두 있습니다. 울타리 밖에서 보아야 했지만 어차피 완전히 공개된 릉역이라 해도 개인적으로 상계까지 침범하지는 않기 때문에 관람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성종은 역대 조선왕들 중에서 가장 유교원리에 충실했던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유학을 신봉하던 당대의 신하들에게는 세종과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성군으로 평가 받았다 합니다. 일을 결정할 때 다른 어떤 왕들보다 신하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중용하게 되었는데 이러다보니 대간의 힘이 강력해지게 됩니다. - 홍문관, 사헌부, 사건원 -


대간은 아주 사사로운 왕의 행동까지도 간섭하고 제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라에 작은 흉한 일이 있어도 왕의 성덕이 부족하다 비판하였다 하니.....과연 성종이 아니면 어떤 왕이 참아 냈을까 싶습니다.


다만...세자인 연산군은 왕을 사사건건 통제하려 드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했던 듯 합니다.



봉분에서 바라본 정자각 입니다. 이상스럽게도 릉을 향하지 않고 옆으로 비스듬히 틀어진 듯 보입니다. 정현왕후와의 동원이강릉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두 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중간쯤을 향한 듯 보입니다.



바로 바깥으로 보이는 오피스건물 입니다. 오백년의 세월이 함께 공존하는 듯 합니다. 다만 정릉에서 느낀것과 같이 지나치게 가까워서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바로 앞의 오피스거리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 입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참도 입니다. 정릉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홍살문까지의 길이 일직선이 아닙니다. 원래 그런것인지는 알수 없지만요.


선릉.정릉은 다녀본 여러 왕릉 중에서도 무척 기분이 좋았고 애착이 갔던 곳 입니다. 주변의 바쁜 풍경에도 아랑곳 않고 홀로 느릴 수 있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릉과 선릉 사이의 오솔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꼭 함께 다시 와야지' 다짐 했던 곳 입니다.


아직 못갔지만요....아껴두고 있습니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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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비, 정순왕후의 릉인 '사릉'은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릉인근에는 광해군묘와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묘, 광해군과 임해군의 친모이자 선조의 후궁인 공빈김씨의 성묘, 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가 묻힌 안빈묘가 있습니다.


요즘은 올레길, 둘레길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걸으며 왕릉 탐방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닐까 싶습니다. 사릉이야 조선왕릉 중의 하나로 다른 왕릉들과 같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중의 하나이니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작년 까지는 비공개 능역중 하나였으나 올해부터 개방하여 현재(2013년)는 임시 무료개방 중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릉을 제외한 다른 곳들이 왕과 왕비의 '릉'이 아닌 '묘' 이기 때문에 관리나 관람, 방문등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점 입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이 찾아가는 길인데 그나마 광해군묘는 찾기가 쉬운 편입니다. 그런데 임해군묘와 성묘, 안빈묘 등은 알고나면 그리 어려지 않은데 모른채 찾아가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사릉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소가 '산'이므로 주소를 찍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안빈묘와 성묘의 경우는 검색하면 지도에 나오기는 하는데 '산' 번지의 특성상 진입로를 알기가 애매합니다.


저도 임해군묘와 성묘는 검색을 통해 미리 다녀오신 분들의 설명을 충분히 참조하고 길을 나섰는데도 다소 헤메야 했습니다. 심지어 원래 이쪽 동네를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안빈묘는 아직 방문 전)


그래서 이 묘들의 방문길을 단 하나의 게시물로 설명하면 좋겠다 싶어 글을 씁니다. 다른 분들은 좀 더 쉽게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우선 검색을 통해서든 자가용을 끌고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사릉'이 가장 찾기 쉬우므로 출발점은 '사릉'으로 부터 설명합니다.


편의상 사릉을 A, 광해군묘를 B, 성묘를 C, 임해군묘를 D, 안빈묘를 E로 표기하여 이 묘들로 접어드는 길목을 해당 알파벳에 번호를 붙여 표기합니다. (아래 참조)



일단 위와 같이 전체적인 위치를 파악하고나면 이미 절반이상 길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붉은 실선으로 표시한 길이 주요동선이고 초록으로 표시한 길이 각 묘로 접어드는 샛길 입니다.


A. 사릉(단종 비. 정순왕후)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108. 

서울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송파, 강동, 노원, 중량 쪽에서는 30~40분 안팍으로 방문이 가능합니다. 작년까지 미공개능역 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주차장은 없으나 진입로앞쪽에 십여대 주차가 가능합니다. 방문객이 워낙 적은 릉이기 때문에 주차할 곳이 모자라는 일은 아직은 별로 없습니다.


[사릉 방문기]


여기서 광해묘로 갑니다.


B. 광해군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9

사릉을 바라본 상태에서 우측(금곡, 홍유릉 방면)으로 400여 미터 걸으면 송능삼거리 입니다.(위의 약도 참고). 이 송능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 다른 묘들로 가는 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로드뷰 입니다. 사릉에서 400여 미터 진행해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면 좌측에 '송능2리'표지와 갈색으로 '광해군묘' 방면을 알리는 표지판도 있습니다. 이제 이 길로 쭉 1.5km정도 직진하면 광해군묘가 위치한 '영락교회 공원묘지' 입구가 좌측으로 보입니다.



공원묘지 안으로 들어가면 광해군묘, 진입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임해군묘와 성묘 가는 길 입니다. 진입하면 예상밖의 꼬불꼬불한 난코스가 기다립니다. 흡사 옛날 대관령 고개를 방불케 하는 고갯길 입니다. 한 600미터 정도 가야 되는데 광해군묘 까지는 그냥 차를 타고 가시는게 좋을듯 합니다.(맨 위의 지도에서 B1의 시작점이 이 공원묘지 입구입니다. 그리고 B1으로 표시한 길 자체가 다 고갯길 입니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왔다 싶으면 곧 위 사진처럼 좌측에 광해군묘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사릉관리소 관할인데 저 초록 철망을 닫아놓지만 잠그지는 않습니다. 차는 마땅히 댈 곳이 없으므로 길에 붙여서 대 놓으면 차량 통행에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공공도로가 아니라 공원묘지내 도로라 차가 많이 다니진 않습니다.


[광해군묘 방문기]


C. 성묘(공빈 김씨)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5

이제 아까의 공원묘지 입구에서 부터 다시 설명 하겠습니다. 공원묘지로 진입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여 약 600여 미터 진행하면 아래와 같은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 곳이 갑자기 길이 좀 넓어지는 곳이고 옛날집이라는 식당도 있고, 성묘진입로를 알리는 표지판도 있으니 알기는 쉽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직진(직직;;;아님)하면 임해군묘와 봉인사 가는 길입니다. 성묘를 가기위해서는 초록색으로 표기한 우측길로 접어 듭니다. 곧 시끄러운 개 두 마리가 반겨줄-_- 겁니다. 제가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고서도 가장 많이 헤맨곳이 바로 이 곳을 지나서 입니다. 그래서 아래 약도를 따로 준비했습니다.



자 붉은 길은 아까 초입의 송능삼거리에서 계속 직진한 길 입니다. 초록색이 갈라져 나오는 길이 좀 전에 설명한 갈림길 부분입니다. 강아지 두마리가 짖는 집을 지나면서 길은 좌측으로 꺽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우측으로 다시 길이 꺽이는데....

그곳에는 집이 두채가 마주보고 있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멘붕......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


다음 로드뷰에도 안 나오는 지역이라 미리 확인 할수가 없습니다. 아래 사진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집 두채가 마주 보고 있고 길이 없습니다. 

이쪽에서 한참 왔다 갔다 하다 위 사진의 우측집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는 아주머니 한테 여쭤보니 집 마당을 통해 뒤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_-;;;;;  이게 원래 길을 마당처럼 쓰고 있는건지, 마당으로 길이 나 있는 건진 모르지만 암튼 정말로 마당모퉁이를 도니 그대로 길이 연결됩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막다른 집과 마당으로 통과하는 길 입니다. 조금만 걸어가다보면 좌측으로 풍양조씨시조묘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보입니다. 돌계단을 오르면 풍양조씨 시조묘가 있고 그 윗쪽으로 성묘가 보입니다.


D. 임해군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6

다시 성묘의 진입로였던 곳으로 되돌아가 그대로 직진하겠습니다. 대략 300미터 정도 올라가다 걸어가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장소가 나옵니다. 시냇가 농장이라는 사슴농장이 보이고 좌측 샛길 입구에 임해군묘입구 표지석이 있습니다.....만!!! 

이쪽길로 올라가시면 안됩니다. 예전에는 이쪽길을 통해서 어디 건물 뒷편으로 진입로가 있었다는데 새로 진입로가 났습니다. 표지석 따라 좌측길로 가지 마시고 그대로 직진 하시면 됩니다.



사슴농장을 조금만 지나면 아래처럼 우측에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다리 같은게 있습니다. 이곳이 보이면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새로 나 있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란 말이 아니라 다리 맞은편인 좌측에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조금 가파르긴 한데 그리 많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길을 새로 내고 잘 다져놓지는 않아서 페인 곳이 많습니다.




E. 안빈묘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66

안빈묘를 가기 위해서는 다시 송능삼거리 방면으로 나와야 합니다. E1, E2 지점 어디서든 진입해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두 길이 E3에서 만나게 됩니다. 차를 가져가셨으면  E1쪽으로 가시는게 더 낫습니다. 


아래사진에서 우측길이 지도에 표시한 E1길인데 평내차량기지 방면길이라 차량통행이 별로 없으니 그쪽라인에 차를 대시고 걸어가시는게 좋습니다.


아래사진은 E2 지점 입니다. 고모네콩탕 이라는 식당 간판이 보이네요.



E1으로 진입하신 경우 쭉 직진하면 평내차량기지로 가게 되니 마찬가지로 고모네콩탕 간판이 보이는 좌측 샛길로 들어갓야 합니다. 그럼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인 E3가 아래 사진 입니다.



저 화살표 방향으로 가시면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를 지나서 안빈묘라고......합니다. (안빈묘는 저도 아직 못가봤습니다 -_-;;)

안빈묘의 경우는 올라가 볼 수 없어서 먼발치에서 봐야한다고.....(합디다;;)


도움들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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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정순왕후가 두 분이 계시다. (고려시대에도 한 분...)


내가 왕후까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정순왕후는 기억을 할 수 밖에 없는 굵직한 사건과 연관된 분들이다.


한 분은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로 단종의 정비, 다른 한 분은 정순왕후(貞純王后 金氏)로 순조를 수렴청정한 것으로 유명한 영조의 계비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비운의 왕비로 회자되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잠들어 있는 사릉(思陵)이다.




사릉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사릉이 있는 곳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의 동네들을 실제 지번과는 상관없이 사릉이라고 지칭하곤 하는데 결혼전에 그 사릉에 거주하기도 했었다. (그니까...불광동 일대를 그냥 '연신내'라고 하듯이) 현재 주변에 있는 경춘선의 이름도 '사릉역'이다.


그러니 한때는 거의 매일 사릉 코앞을 왔다갔다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릉 바로 앞 도로를 다니면서도 그곳이 사릉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릉입구와 도로 사이에 폭이 약 10여미터 되는 녹지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 가려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해 지면 비로소 사릉의 입구가 보이긴 하는데 어차피 작년까지 비공개릉 이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들을 태우고 그 앞을 지나던 중 '사릉 시범개방' 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급히 차를 돌려 방문.

수년을 지나다니면서도 볼 수 없었던 곳에 비로소 입장하게 되었다.



이때가 2013년 3월. 잔디가 아직 누런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복방과 수랏간의 흔적은 찾지 못했고, 아담한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조선왕릉이 등재되면서 시범개방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입구에 관광버스 한대가 서 있고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우르르 신도를 밟고 가는 사람들 뒤로 관리하시는 분이 '가운데로 가시면 안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분은 팩소주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권한다.....하아.....



릉 주변엔 비교적 어린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처음부터 자연지형이 그랬던 것인지 훼손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측면에서 찍은 강(언덕)은 눈에 띄게 굴곡이 있다. 혹자는 정순왕후의 인생굴곡과 비유하기도 한다. 사진 우측에는 예감과 예감 뚜껑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예감뚜껑은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라 한다. (보통은 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남아 있기 힘들다고...)


해질녘 집에 가는 도중 잠시 들른터라 길게 있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아마도 7월쯤 이었던것 같다. 큰 녀석만 데리고 다시 사릉을 찾았다. 이렇게 즐겁게 같이 다녀주니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정순왕후 송씨는 열 다섯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 한 후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됨에 따라 정순왕후 또한 군부인으로 격하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동대문 밖에서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렵게 살던 그녀는 세조가 내리는 식량과 집을 끝내 거절하고, 동네 부인들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청계천의 영도교(永渡橋)에서 단종과 이별한 그녀는 죽을 때까지 단종과 재회 할 수 없었다.


영월로 유배를 갔던 노산군(단종)은 끝내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고 만다. 노비의 신분으로 강등된 정순왕후는 82세로 생을 마쳤는데 조선왕비중 2번째로 긴 수명이었다. 어릴적 그 파란을 겪고 남은 생이 어떠 했을지.....


세조(수양대군)는 일말의 미안함이 있었는지 그녀를 신분은 노비이나 노역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다. (일설에는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가 노비 신분의 정순왕후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 한다)


(정순왕후 송씨의 생애는 위키백과 참조 http://goo.gl/UDIio2 )



지난 3월 방문때의 누런 때를 벗은 잔디는 초록이 찬란했다. 소나무의 개체수는 많았으나 아직 어린탓인지 원래 품종이 그런 것인지 여리고 갸냘픈 느낌이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긴 시간이 흘러 숙종 24년 비로소 복위되어 '사릉'이라는 능호를 받게 된다. 사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특이한 점은 릉 주변의 소나무 숲 사이로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무덤들이 군데군데 보인다는 점이다. 원래 릉 주변에는 가옥이나 다른 무덤을 쓸 수 없다. 그러나 정순왕후의 장례는 대군부인의 예로 치뤄졌었는데 이미 친정도 몰락한 후라 단종의 누나인 정혜공주 시가인 해주정씨 묘역에 묻히게 된다. 살아서도 고단하고, 죽어서도 고단한.....


그 후 복위와 함께 능호를 받게 되지만 정순왕후를 보살핀 공을 생각해서인지 주변의 묘들은 이장되지 않고 남아 있다. 정말 그 공을 높이사서 남겨 두었던... 단지 신경쓰지 않아 그리 되었건, 정순왕후에게는 이 편이 좋을듯 하다. 자신을 받아준 정씨 묘역이 자신 때문에 이전되면 맘이 편치 않을 듯.



능 주변 뿐 아니라 곳곳이 어리고 여린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 울창하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다. 알고보니 사릉의 능역 자체는 작은데 우측으로 넓은 부지가 있는데 이곳이 전통수목양묘장이다. 어린 소나무들이 이곳에서 묘목으로 자라나 전국의 궁.능.원에 식재되고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를 위해 사용된다 한다. 


그런 내막을 알고 나니 세조가 잠들어 있는 광릉이 떠오른다. 광릉은 정순왕후가 잠든 이곳 사릉에서 불과 약15키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자동차로 30분 거리. 살아생전 단종과 정순왕후를 죽음과 비통함으로 내몰은 세조의 광릉에도 사릉에서 자란 수목들이 식재되고, 보수에 사용될까? 이미 세상에는 없지만 세조는 그렇다면 어떤 마음일까.....하는 생각들.



울타리를 쳐 놓아 봉분근처까지는 올라 갈 수 없다. 지난번 방문과는 달리 신도앞에는 안내 팻말이 있어 사람들이 올라가지 않는다.


아...정자각마저도 작다. 릉이 작으니 정자각인들 클 수 있으랴만은....



아래에서 바라본 봉분과 강. 굴곡이 뚜렸하다. 석물들 또한 무석인은 없고 전체적으로 작다 하는데...올라갈 볼 수 없으니 아쉽다. 관리하시는 분께 물어보니 '뭐 여기서 다 보이는데 올라가서 뭐하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쩝...일반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어찌 절차를 밟으시라 설명...할 줄 알았는데.... 



사릉의 비각.



지난번 멀리서만 찍었던 예감을 가까이서 다시 찍었다. 두조각으로 쪼개져 있는 듯 한데 마침 새 두마리가 각각의 조각에 앉아 있다.



이렇게 소나무가 늘어선 옆길이 있다. 길이 길진 않으나 잠시 천천히 걸어보고 반대편길인 전통수목양묘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왕릉에 가면 아이들과 같이 돗자리 깔고 잠시 쉬다 오는걸 즐기는데 사릉의 경우 일단은 임시개방인 상태이고, 규모에 따라 잔디밭도 크지 않다보니 왠지 그럴수 없는 분위기이고....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정통수목양묘장에선 이렇게 어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것보다 더 어린 묘목들도 있고, 좀 더 큰 묘목들도 있다. 다른 왕릉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릉만의 색다른 풍경이다.



재실은 관리사무실로 사용중인지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문 틈으로 훔쳐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릉인 장릉에는 사릉에서 가져와 심은 소나무인 '정령송'이 있다 한다. 두 분의 한이 조금이나마 가실까? 개인적으론 지금이라도 두 분을 함께 모시면 어떨까 싶은데 아마 남양주와 영월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건 쉽지 않겠지...

(실제로 그런 의견이 나온바 있으나 무산되었다 한다)


사릉은 내 자주 지나다녔으니 훗날 영월의 장릉에 가게되면 단종께 꼭 안부라도 전해 드려야겠다.








[사릉을 가시려는 분들께]

* 사릉 주변에는 가까운 거리에 광해군묘, 임해군묘(광해군의 형), 성묘(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의 친모인 공빈 김씨묘), 안빈묘(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묘]가 있습니다. 함께 돌아보시면 좋습니다. 아무래도 릉이 아니다보니 안내가 자세하진 않은데 먼저 찾아본 분들이 설명을 해 놓은 글들을 보고 저도 찾아가 봤습니다. 


하지만 나름 그쪽 지리를 알고 있는 저도 좀 헤메게 되더군요. 조만간 언급한 묘역들을 정리해서 약도를 한장 만들어 올려야 겠습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거리에 고종과 순종을 모신 홍릉.유릉도 있지만, 홍유릉과 광릉은 따로이 방문 하시고 사릉지구에서 관리하는 묘역들을 트레킹코스로 묶어 하루방문 하면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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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릉에서 발길을 돌려 나오면 혜릉 입니다. 조선의 20대 왕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를 모신 단릉 입니다. 단의왕후는 경종이 즉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혜릉은 세자빈묘인 원의 형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훗날 경종이 즉위 후 단의왕후로 추존 되어 능호도 혜릉으로 바뀌었습니다. 때문에 혜릉은 동구릉에 조성된 9기의 능 중 가장 규모가 작고 단촐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따라 이렇게 '묘'나 '원'이 '능'이 되기도 하고, '능'이 묘로 격하되기도 하죠.

단종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산군으로 격하된 후 봉분도 없는 처지였으나 훗날 숙종 때 단종으로 추존되며 '장릉'이 조성됩니다.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 역시 노비로까지 격하되었고, 장례는 대군부인의 예로 치뤄졌으나 단종과 함께 복위되어 현재의 '사릉'이 되었습니다. 


또 광해군의 친모인 '공빈 김씨'의 묘는 광해군시절 '성릉'으로 조성되었으나 광해군 폐위와 함께 '성묘'로 격하되었습니다. 때문에 혜릉과는 달리 현재는 '묘'이지만 조성양식은 '능'의 그것입니다.




무석인과 무석인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는데 능침에는 올라가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홍살문 앞에서 찍어도 정자각과 능침, 비각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합니다.



숭릉의 웅장한 정자각을 보고난 뒤라 그런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정자각. 실제로도 작습니다.



혜릉의 수복방역시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아쉽게도 수복방이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네요....

또 돗자리를 깔고 쉬자는 아이들을 다독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동구릉에 와서 두 개의 릉만 보고 갈 수는 없지요.



이제 경릉으로 갑니다. 무더운 날이었는데 아직 아이들이 방전되지 않아서 다행.....



조선 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의 삼연릉입니다. (동구릉 안내책자에는 효현왕후, 효정왕후로 적혀 있는데 릉 앞에 안내판은 '황후'로 되어 있네요) - 아마도 고종의 대한제국을 선포 한 후 선대왕들이 황제로 추존되었기에 황후로 기록된 듯 합니다.



조선 유일의 삼연릉 이라는데 능침은 올라가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커지네요. 멀리서나마 석물의 간격으로 추측해 볼 뿐입니다. 



경릉의 참도. 박석이 넓게 깔려 있습니다. 


이제 관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원릉으로 향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인지 원릉의 정자각쪽으로 바로 접어 들었네요. 원릉은 조선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 입니다. 

영조는 원래 홍릉에 정성왕후와 같이 잠들기를 바랬으나 결국 동구릉의 원릉에서 계비인 정순왕후와 누워있습니다. 영조 생전에 홍릉을 조성하면서 자신의 자리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현재도 홍릉은 쌍릉의 양식을 간직한 단릉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손자인 정조의 원망이다, 정순왕후의 시샘 때문이다....라는 말들이 있죠.



원릉의 예감.



원릉의 산신석과 비각입니다. 뭔가 이상한 것 없나요? 누워계신 분은 분명 두 분인데 비각은 세칸 입니다. 하나는 '영종대왕' 비석이고, 하나는 정순왕후, 나머지 하나는 훗날 고종시절 세워진 '영조대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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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날이던 5월 중순 어느날. 느즈막히 일어나 아이들과 외출 준비.

춘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 헐...고속도로를 탈 수도 없었다. 이건 무슨 피난길도 아니고....


급히 운전대를 돌려 동구릉으로. 미공개능 이었던 숭릉이 개방되었단 소식을 들어서 안그래도 가보려던 참이라.

동구릉에서도 몇십분을 주차대기를 하며 어렵게 주차.


동구릉 안내도. 안내전단에는 재실을 지나 쭉 직진해서 처음 나오는 수릉(추존 문조의 능) 부터 반시계방향으로의 관람을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 비공개지역이였던 숭릉을 보는 것이 주 목적이므로 그 코스와는 정반대로 진행하기로.

숭릉은 위 이미지에서 가장 좌측상단의 능인데 비공개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능에 비해 따로 떨어져 있어 아무래도 관람동선에 불리함이 있다.


어쨌든 첫번째는 좌측상단의 숭릉부터 시계방향으로..... 9개의 능이지만 그냥 쉬엄쉬엄 볼 수 있는 곳 까지만 하기로.



매표소를 지나면 우측에 보이는 역사문화관이다. 예전에는 없었던것 같은데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정비를 하면서 통일되게 만든 것 같다. (그러고보니 숭릉과 마찬가지로 새로 공개된 사릉에는 없었다)



역사문화관 내부에는 조선왕릉의 분포도가 있다. 조선왕릉은 대부분 예전 한양에서 30km 이내의 거리이니 현재의 서울시내나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있다. (물론 장릉(단종)과 융.건릉(추존 장조(사도세자)/정조)등의 예외도 있다)


터치패널로 조선왕릉의 구조에 대해 공부해 볼 수 있다. 마침 아이들과 요즘 공부중이었는데 좋은 복습이 되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벽면에는 각 능의 조성과 천장등의 역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조선왕릉의 내부구조와 조성방법에 대한 시청각자료가 나오고 있다.



역사문화관을 나오면 큰 홍살문을 지나 이렇게 큰 숲길을 조금 걷다 보면 우측에 재실이 나온다.



앗...이럴수가 동구릉 재실은 개방하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자니 둘째놈이 '저쪽 옆으로 돌아가면 된다구요~!' 하면서 자꾸 재촉한다. 그럴리가 있겠냐며 무시했더니 자꾸 돌아가면 들어갈 수 있다고 잡아 끈다.



까불랑까불랑 앞장서는 둘째 녀석. 반신반의하며 따라가니 측면의 쪽문을 봐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문도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옆촉의 담은 밖에서는 매우 낮아서 재실 내부가 훤히 보인다. 아쉬운대로.....



이제 숭릉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부분의 왕릉이 그러하지만 숭릉으로 향하는 길은 동구릉내의 다른 어떤 릉보다도 호젓한 숲길이다. 이제 공개되었다고는 해도 관람객의 발길 또한 뜸하다.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걷기 좋다. 가다보면 길 좌측에 출입금지 되어 있는 샛길이 있는데 그쪽길이 원래 주 길인듯 싶다. 그쪽길로는 연지(연못)이 있는데 철새보호지역인가? 해서 아직 방문객은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드디어 도착한 숭릉. 그동안 미공개지역이었던지라 동구릉이 관람객에겐 동팔릉에 다름아니었는데 이제 비로소 동구릉이 된듯 하다. 숭릉은 조선의 18대 왕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의 능이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성황후가 아니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비로 대한제국 선포로 '황후'가 되었고 현종의 비는 명성왕후이다. - 숭릉옆이 훗날 명성황후의 초장지로 결정되어 조성되었던 흔적이 있다한다.)


현종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효종의 아들로 역대 조선의 임금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출생한 인물이다. 

숭릉은 쌍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 멀리 정자각 뒷편으로 어렴풋이 봉분이 두개 보인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정자각과 능. 그런데 통상 홍살문 전에 있어야 할 금천교가 보이지 않는다. 효종의 영릉처럼 참도중간에 금천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뒤를 돌아보니 이렇게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이 길이 아마 아까 오는 길 중간에 통행금지 되어 있던 그 길과 연결되는 길인듯 싶다.



숭릉의 정자각이다. 조선왕릉의 정자각중 유일하게 팔작지붕이다.(보물 제 1742호) - 다른 정자각들은 대부분 맞배지붕이다.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의 차이점을 잘 모르면 다른 분의 블로그를 참조...  http://blog.daum.net/magpie_kor/7979704 )

쩝...볕 좋은 날이었는데 이 사진은 핸폰으로 찍은거라 사진이 별루 이쁘지 않다.



숭릉의 정자각은 단지 지붕만 팔작지붕인것이 아니라 좌우에 익랑을 두어 그 규모 또한 다른 정자각에 비해 웅장한 느낌이다. 

공개를 앞두고 단청을 새로 정비했는지 더욱 화려함을 더 한다. (숭릉의 정자각만 팔작지붕인 것은 당시 중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라 한다. 현종 자신이 청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나는 윗 사진의 좌측 상단이 예감인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니 숭릉은 예감이 3개라는 말이 있다. 실제 사진을 보니 저 둥그란 것 외에 정확한 사각형의 것 하나와 또다른 다소 망가진 사각형태의 것이 하나 더 있다. 근데 정말 세개가 다 예감인지는 모르겠다.

아래는 수복방 터. 비각은 특이하게도 정자각보다 뒷쪽의 능침공간 안쪽에 있다. (관람객이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찍을 수가 없다)



5월 중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아이들과 잠시 그늘아래 돗자리 깔고 더위를 식혔다. 한참 뒹굴거리다가 자리를 뜰 때 발견한 작은 물줄기. 맑고 시원하여 잠시 손을 담그고 돌아선다. 


조용하고 한가로워서 좋았는데....어떤 분들이 축구공을 갖고와서 잔디밭에서 공차기를;;;;;;;;;;;곧 공익요원의 제재를 받고 그만두긴 했지만. 지금은 왕릉에는 놀이기구나 탈 것 등을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 아이들의 비누방울 놀이도 안된다.


우리 어릴때 소풍와서 뛰어 놀던걸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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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과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을 잇는 숲길은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기간이라 통행이 차단되어 있었다. 5월부터 개방이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일단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니 주차장 끝에 산책로가 있다.


흙길이지만 바닥이 고르게 정비되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도 나쁘지 않다.

매표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라고는 해도 사진에서 보이듯이 효종의 영릉으로 향하는 발길은 많지 않았다.

하필 나란히 있는 능이 세종대왕의 영릉이라 더더욱.....



덕분에 아이들과 오붓하게 걷는다. 중간에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어서 쉬엄쉬엄 걷는다.

식구들 모두가 북적거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조금 더 유유자적 놀며 쉬며 걸으면 좋을것을 너무 시간이 늦었다.



숲도 좋고, 길도 좋고, 날도 좋다...

그냥 완만한 산책길이라 무릎이 안 좋은 내가 걷기에도 무리 없다.



아이들은 지들끼리 깔깔대며 뛰었다 걸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기운도 좋아.



절반을 넘어 온 듯 한데 영릉엘 갔다가 다시 이 길을 되돌아 주차장으로 갈 것을 생각하니 시간도 시간이고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칭얼댈듯 하여 아이들과 엄마는 계속 길을 가고, 나는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차를 가지고 효종의 영릉으로 가기로 했다.



쉬고 있는 둘째....귀여워라. 산골 어느 절간에 있음직한 동자승상 같다.



매표소를 지나면 곧 재실이 나오는데 나처럼 잘 모르는 뜨내기 방문객이 봐도 다른 능의 재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잘 보존된 고택같은 느낌. (후에 찾아보니 조선왕릉의 재실중에선 가장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보물로 지정된 상태라 한다)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이 재실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굳이 무엇을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정갈한 느낌.

재실을 둘러보고 나갈 때 까지 방문객은 우리가족이 전부.....덕분에 고즈넉함까지....



아이들의 이정도 까불까불은 조상님들도 웃어주시겠지.



어느 별에서 왔을고 이 녀석들은....


언젠가 다시 이 녀석들이 조금 더 크고 나도 릉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한 후 다시 오고 싶다. 이 재실만을 보기위해서라도.



홍살문으로 들어선다. 



앗. 금천교가 홍살문 안의 참도 중간에 있다. 보통 금천교는 홍살문 바깥쪽에 위치한다.



해가 뉘엇뉘엇 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자각옆으로 이렇게 길이 나 있다. 공구리를 치지 않고 잔디와도 이질감이 없어서 좋은 것 같다. 



맘이 급한 나는 멀리 앞장서고 아이들은 놀며 즐기며 뒤쳐진다. 사람들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빨리 와'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인선왕후의릉에 먼저 닿는다. 기대치 않았는데 봉분 앞에까지 길이 이어져 있다. 찾는이가 많지 않으니 저 밧줄로 만든 안내선만으로도 길이 되고 선이 되는 듯 하다. 세종대왕의 영릉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 이었겠지.

쌍릉이긴 하지만 봉분이 나란히 있지는 않은 특이한 구조이다. 좌우 쌍릉을 쓰게 되면 정혈을 비켜나가게 되어 풍수상의 이유로 상하로 위치하였다 한다. 


때문에 인선왕후의릉에는 난간석은 있지만 곡장(봉분뒤의 낮은 담장)은 없다. 기본적으로는 쌍릉이기 때문에 윗쪽에 있는 효종릉의 곡장이 인선왕후릉 까지 아우르는 듯 하다.




효종 임금님 같이 사진 좀 찍어요.....내려오기 전엔 아이들과 함께 꼭 인사도 하고 옵니다 :)


영릉 입구를 통과하여 다시 나올 때 까지 방문객은 우리가족이 전부였다. 그때가 해가 지기 시작하는 5시 전후이긴 했지만 꽃피는 봄날의 일요일이었는데 말이다. 주차장에는 차가 계속 오고가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매표소 바로 앞에 약수가 있는데 모두 생수통을 들고 약수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아이들과 왕릉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동구릉에도 몇번 갔었고, 광릉에도 몇번, 사릉에도 한 번....


그런에 이번에는 좀 의미가 남달랐다. 그 이전에는 아이들이 릉과 조선, 임금의 개념도 모르고 그냥 잔디밭에 놀러가는 것이었고 나역시 아이들과 함께 숲에 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헌데 이번 영.영릉 방문 때는 릉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가는 것이니....


그런데도 부모인 나는 그저 숲에 잔디밭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듯 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가 뭔가 허전하고 아쉬운 느낌.


돌아와서 며칠동안 조선왕릉에 대해 공부했다. 살아생전만큼 죽어서도 많은 사연과 이야기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다음 방문 때에는 내가 그저 스치고 지나온 풍경들에 대해 반가이 손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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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릉은 주로 도읍인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왕이 조상을 모시러 갈 때 가급적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여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기도 하고, 한양이 도읍이었으니 한양을 중심으로 릉이 형성되는건 어쩌면 당연한듯도 하다.


세종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과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은 경기도 여주에 이웃해 있다.


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현재 주소지로 한다면 대부분 서울이나 구리, 남양주, 고양, 파주 등에 있는 능원들을 염두에 둔다면 꽤나 멀리 자리 잡으신듯 하다. - 방문 후 확인해 보니 영릉과 영릉 모두 천장(묘를 이전 함)되어 이곳으로 모셔졌다 -


안내도에서 보듯이 이름마저 같은(한문으로는 다르지만) 두 릉은 이렇게 이웃해 있다.


함께 있어서 영.영릉, 영녕릉, 영령릉으로 불리우긴 하지만 주차나 편의시설, 전시관 등의 대부분의 것이 세종대왕의 영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뭐랄까....세종대왕님은 조선 임금님들중 아이돌이랄까......





매표소를 지나면 세종대왕 시절에 발명된 관측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도 첨보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도 많다. 해시계만도 종류가 꽤 여러가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시계는 '앙부일구'라고 한다. (경복궁안에도 있고 광화문사거리 세종대왕 동상앞에도 있는 그거)




야외전시장의 반대쪽에는 동상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종대왕님과 같이 사진도 한번....

6살 8살 아이들인데 세종대왕이 대군시절 충녕이란것과 이름은 '이도'라는 것. 형들이 양녕과 효령이라는 것. 

아버지가 태종이고 그 태종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인데 이방원이 동생들을 죽이고 왕이 된것 까지 알고 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고 그의 형이 2대 왕인 정종. 이방과 라는 것 까지.


뭔가를 가르친 적은 없고 그냥 같이 옛날얘기 하듯이 얘기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역사공부라는 개념도 아니고 정말로 그냥 재미난 동화나 옛날얘기 하듯.....


요즘은 둘이 누워 잠들기 전에 자기들끼리 역사퀴즈 내고 맞추기를 하다 잠들곤 한다.


아마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 까지는 왠만한 어른들 보다 더 잘 알지 싶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게 된 경위와 사육신과 생육신들 까지 알고 있다. (단종릉인 장릉에는 아직 못가봤지만 단종비인 '정순왕후'릉인 '사릉'에도 이미 갔다왔다)



동상앞에서 한번 점프 샷. 아무리 찍어도 큰 놈은 뻣뻣하고 둘째 놈은 역동적이다.




세종대왕 영릉의 재실이다. 현재의 재실은 복원된듯 하고, 원래 재실은 매표도 바깥쪽에 터만 남아 있다.

재실 건너편에는 '세종전' 이라는 아담한 전시관이 있어서 유물등을 전시하고 있는듯 한데, 나올 때 보기로 했다.




이제 홍살문을 들어섰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참도는 가운데의 높은 곳이 '신도'라 하여 혼령이 지나는 길이고, 측면의 낮은 곳이 '어도'라 하여 왕이 지나는 길이다. 만인지상인 임금이 낮아지는 곳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참도가 가운데에 있고 어도가 양쪽에 있는 3도의 형식이다. 다른 곳은 2도였던 것 같은데??

(집에와 찾아보니 1970년대 세종대왕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잘못된 복원을 하였다 한다. 3도는 중국식의 황릉 양식. 실제로 '대한제국'선포후 조성된 고종과 순종의 '홍.유릉'은 참도가 3도로 조성되어 있다.)


릉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쉽게 알 정도면 이제라도 다시 복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잘못된건 알지만 그냥 황제릉이 좋으니까 그냥 냅두는건가?? 그렇다쳐도 왕도 걷지 못했던 신도를 저 수많은 방문객이 걷도록 두는 이유는 뭔지....

간단한 안내문이나 안내판만 있어도 좋을것을. 사진에서 처럼 참도 옆으로는 원래 나무들이 없었던 것인지 성역화 사업을 하며 밀어버린 것인지 모를 넓은 잔디밭이 있다. 그래놓고 울타리를 쳐 놓으니 신도를 밟지 않고 다니기가 더 어렵다. 이 무슨 앞뒤 안 맞는 복원인지 모르겠다.


암튼 의미를 아는 이상 신도로는 갈 수 없고, 아이들과 어도를 걷는다.



멀리 정자각이 보이고 뒷편으로 봉분이 보인다. 세종대왕릉인 영릉은 조선왕릉중 최초의 합장릉이다.

원래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서울 서초)쪽에 쌍실로 능을 조영하여 세종 승하후 합장하였으나 예종 때에 입지가 불길하다 하여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한다. (문종과 세조가 소헌왕후의 소생)



헐? 생각지도 않았는데 봉분 앞까지 올라올 수 있다. 그것도 무려 봉분 앞까지 조성된 돌계단으로;;;

팔팔한 아이들이 먼저 후다닥 뛰어 올라가 기다리고 있다. 우측은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무석인인듯 하다. 즉, 관람객들은 하계까지 올라 올 수 있다는 것....



이렇게....하계까지 올라올 수 있다. 뒤로 중계와 상계가 명확히 구분된다.



조선왕릉은 봉분이 자리잡은 상계와 그 밑으로 중계, 하계로 명확히 높이가 구분된다. 문인상은 사진처럼 중계에 위치하며 무인상은 그 밑인 하계에 위치하는데 조선후기로 가며 문무의 차별?...격차가 없어지며 같이 위치하기도 한다.




아이들 바로 뒤에 보이는 것이 장명등이고 사진 좌측과 우측에 있는 기둥 같은 것이 망주석이다. 

봉분아래를 둘러싸는 병풍석은 생략되어 있고, 난간석만 있다. 봉분앞에 있는 큰 돌테이블 같은 것이 혼유석이다. 커다란 돌상처럼 생겨서 제사를 지낼때 음식을 놓는 곳인가 하고는 한다는데, 혼유석은 봉분의 주인인 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라 한다. 또한 무덤의 입구이기도 하다. 위에 사진에는 장명등에 중앙이 가려져 마치 커다란 하나로 보이지만 영릉의 혼유석은 두 개이다. 합장릉이니까.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동그랗게 생긴 다리가 고석)


세종대왕의 영릉을 보고 내려오면 효종의 영릉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데 화재예방을 위해 5월부터 개방. 우리의 방문은 아쉽게도 4월 말이었다.



할수없이 다시 입구로 나와서 효종의 영릉에 방문하기로 하고 나오는 중에....큰 놈의 거침없이 하이킥.



아참! 나올 때 세종전에 들러서 전시물 보기로 했지!!


들어서자마자...


 '앗 이종무다!!! 아빠! 이종무예요!!!'


 헐...아이들이 그림만 보고도 나보다 더 잘 안다. 쓰시마정벌에 나선 이종무 그림이다. 이렇게 세종대왕 시절의 각종 자료들과 그 시절 제작된 편경과 편종들의 유물들이 복원전시되어 있다.


이제 날이 저물기 전에 효종의 영릉으로.....


사실 아이들도 힘들고 해도 기울어가서 그냥 갈까 했다. 그런데 예까지 와서 그냥 가면 효종께서 서운해 하실 듯 해서 언능 다녀오기로.

(다녀와서는 그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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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릉세종대왕유적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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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956-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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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r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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